[권대익] 「잠수복과 나비」를 읽고
「잠수복과 나비」를 읽고
권대익
우리 복지관은 오랫동안 장애인 기능특화기관이었습니다. 지역 특성이 그러합니다. 이번 기회에 장애인 관련 책을 읽고 공부하기로 마음먹었습니다. <잠수복과 나비> (장 도미니크 보비 지음). 이 책은 뇌졸중으로 쓰러진 저자가 3주 후에 의식을 회복한 후 쓴 글입니다. 의식은 있으나 온몸이 마비되고 왼쪽 눈꺼풀만 움직 일 수 있는 상황에서 20만 번 이상 눈을 깜박거려 완성했습니다. 온몸을 움직일 수 없는 상황을 잠수복으로 비유하고, 자유롭게 상상할 수 있는 생각과 정신은 나비로 표현했습니다. 책을 읽으니 제목이 이해되었습니다. 저자가 하루 반쪽 분량씩 쓴 이야기를 두 시간 만에 읽었습니다.
선의일지라도
흰 가운을 입은 사람들은 다짜고짜 내 옷을 갈아입혔다. “기분 전환에 좋습니 다.”라고 신경과 의사가 거드름을 피우며 말했다. 아닌 게 아니라 노란 나일론 구속복 위에 체크무늬 셔츠, 낡은 바지와 어정쩡한 스웨터를 입는 것이 기쁨을 줄 수도 있었을 것이다. (…) 두 명의 건장한 사나이가 내 어깨와 발을 잡더니, 침대에서 들어 올려 되는 대로 바퀴 의자에 내려놓았다. 18~19쪽
흰 가운을 입은 사람과 두 명의 건장한 사나이는 자신의 직무에 맞게 열 심히 환자를 도왔을 겁니다. 선의를 위한 행동이 당사자에게는 최선이 아 닐 수도 있습니다. 최소한의 안전장치로 당사자에게 물어야 합니다. 의식을 회복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장애를 받아들이기 힘든 상황에서 전문가의 처방은 원자폭탄과 단두대와 같다고 합니다.
민감함
병원 구성원을 크게 두 집단으로 나눌 수 있음을 발견했다. 내가 던진 SOS 신호를 어떻게 해서든 이해하려는 대다수 성심파 직원과, 그와는 반대로 내 구원 요청 신호를 못 본 체하고 지나가버리는 유형의 무관심파가 그 두 그룹이다.
보르도와 뮌헨팀의 축구 경기 전반전이 끝났을 때 “안녕히 주무시라”는 인사말만 남기고 매정하게 TV를 꺼버리고 나가는 눈치 없는 직원은 후자에 속한다. 이 같은 의사소통의 단절은 단순한 불편함을 넘어서 중압감으로까지 느껴진다.
그러는 만큼 하루에 두 번 상드린느가 병실 문안으로 들어와서는 미안함을 감추지 못하는 어린아이의 표정으로 모든 불편함을 대번에 해소시켜 줄 때 느끼는 위안감은 말로 이루 표현하기 어려울 정도이다. 내 몸을 항상 옥죄고 있는 보이지 않는 잠수복이 어느 정도 느슨하게 풀어지는 느낌이다. 56쪽
성한 눈으로 나는 질문이 있다는 신호를 거듭 보냈으나, 그는 허구한 날 남의 눈동자를 들여다보는지는 몰라도, 남의 시선에 담긴 메시지를 읽지는 못하는 모양이었다. 그는 무관심하고 건방지며 퉁명스럽고 교만하기 짝이 없는 의사의 전형이었다. 74쪽
구원 요청 신호를 못 본 체하는 무관심한 사람, 눈을 고치는 의사이지만 눈빛은 살피지 못하는 사람. 글을 읽으며 당당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복지관 사무실에서 바쁜 일정과 업무에 치이다 보면 사회복지사를 만나고 싶어 하 는 지역주민의 눈빛을 놓칠 때가 종종 있습니다. 당사자를 만나고 있지만 당사자가 이야기하는 마음을 잘 읽지 못할 때가 있습니다. 여유를 갖고 민감하게 귀 기울일 때 보입니다. 민감하게 귀 기울일 수 있는 힘은 진정성과 애정입니다. 이것만으로도 당사자의 온몸을 옥죄고 있는 듯한 잠수복을 느슨하게 풀 수 있다고 합니다. 늘 부끄럽지 않게 일하는지 성찰하고 싶습니다.
자존심
어느 날 문득 나는 마흔네 살이나 먹은 사람을 갓난아이처럼 씻겨 주고 닦아 주고 기저귀를 갈아 주는 것이 우스꽝스럽다고 생각한다. 갓난아이처럼 퇴행한 내 모습에서 때로는 병적인 쾌감을 느낄 때도 있다. 하지만 다음 날에는 이 모든 것이 더할 나위 없이 비극적으로 느껴져, 간호보조사가 내 볼 위에 발라 놓은 면도용 비누거품 위로 눈물이 주르륵 흘러내릴 때도 있다. 27쪽
당사자에게도 자존심 체면 염치 품위 인격이 있습니다. 자기 삶을 스스로 선택 통제하고 주인 노릇 하고 싶을 겁니다. 때때로 받는 일에 익숙해 보이는 당사자도 있지만 어쩌면 일방적인 서비스만 제공한 우리 실천 때문 인지도 모릅니다. 사람답게, 어른답게 돕고 싶습니다.
시선
뻣뻣하게 굳어 버린 몸에다가 변변한 인사말도 건네지 못하면서, 우리보다 는 운이 좋은 다른 환자들 그룹을 지나칠 때면, 우리로 인하여 순식간에 분위기가 어색해져 버리는 것을 누구보다도 잘 안다. 47쪽
입이 백 개에 귀가 천 개가 달린 도시라는 이 괴물은 아무것도 모르면서 모든 것을 아는 듯 떠들어대는 속성이 있으며, 나에게도 이 괴물은 여지없이 공격을 가했다. 나를 알지도 못하면서 말 만들기 좋아하는 사람들이 “B 씨가 완전히 식물인간이 되었다는데 알고 있었어?” “물론이지.” “맞아, 정말 식물인간이래.” 마치 먹이를 발견하고 군침을 삼키는 독수리처럼, 탐욕스럽게 그 자들은 이 대화에 달려들더라고 친구들은 전해 주었다. 110쪽
약자일 때 무엇보다 남의 시선에 민감해집니다. 아무도 말하지 않아도 나를 쳐다보는 시선은 느껴집니다. 저자는 당사자에게 이러쿵저러쿵 이야 기하는 소리를 군침을 삼키는 독수리로 비유합니다. 약자일 때는 충분히 그렇게 느껴집니다. 그러니 더더욱 예와 성을 다해 만납니다.
가족
가끔씩 걸려 오는 전화 때문에 이 훈련이 중단되기도 한다. 친지들에게 상드린느가 오는 시간에 맞추어 전화를 하도록 부탁했기 때문이다. 전화를 통해 마치 나비를 잡듯이, 친지들의 삶의 한 귀퉁이를 붙잡아 볼 수 있다. 57쪽
셀레스트는 맨살이 그대로 드러나는 두 팔로 내 목을 감싸 안고, 내 이마에 입 맞춤을 퍼부으며 주문이라도 외듯이 “우리 아빠, 우리 아빠”라고 반복한다. 마침 아버지의 날을 축하하는 중이다. 내가 사고를 당하기 전까지는 이처럼 강요된 기념일을 지켜야 할 필요를 느끼지 못했으나 이제는 함께 모여 이 상징적인 하루를 보낸다. 96쪽
친척들과 전화통화 하는 시간을 나비를 잡는 것으로 비유합니다. 사고를 당하기 전에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았던 기념일이 지금은 특별한 날이 되었습니다. 보고 싶은 사람과의 관계가 바로 날개입니다.
최근 한겨레신문에서 요양원에 있는 노인에 관해 다룬 기사를 읽었습니다. 가족사진을 애지중지 살펴보며 명절만을 기다립니다. 그 때만큼은 초점 없는 눈동자가 반짝이고 뺨은 분홍빛으로 물듭니다. 그마저도 딸만 둔 분은 가족과 만날 수 있는 기회가 없습니다.
이처럼 약자에게 가족의 존재는 그만큼 중요하고 크게 다가옵니다. 당사자와 가족이 어울려 살도록 돕는 방식으로 일하고 싶습니다.
당사자의 시선에서
잠수복과 나비. 이 책은 장애인생활시설 ‘월평빌라’ 직원들의 필독서입 니다. 약자를 직접 돕고 만나는 사람에게 약자의 마음을 살필 수 있는 책이기 때문일 겁니다. 장애 당사자인 저자가 20만 번 눈을 깜박이며 쓴 글에는 당사자의 시선이 담겨있습니다. 저자가 직접 보고 듣고 느낀 이야기에서 약자의 마음을 이해하게 됩니다. 그 마음을 이 책에서 조금이나마 알게 되었습니다. 깨어 있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