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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사업가의 책 읽기/사회사업가의 고전읽기

[고전읽기] 외로움이 만든 괴물, 프랑켄슈타인

by 구슬꿰는실 2024. 7. 12.

 

 


외로움이 만든 괴물, 프랑켄슈타인

 

 

 

김세진

 

사회복지사사무소 '구슬'

 

 

 

 

'구슬꿰는실'에서 진행한 '고전 읽는 사회복지사 모임'에서 이번에는 메리 셀리의 <프랑케슈타인>을 읽었습니다. 우리가 알고 있던 이미지의 프랑켄슈타인 모습을 떠올렸습니다. 시체 조각을 이어 붙여 몸을 만들고, 번개로 만든 전기에 감젼시켜 생명을 불어 넣은 괴물. 한여름 밤에 모여 읽기 재미나겠다 싶었습니다.

 

이럴수가! 프랑켄슈타인은 그동안 알고 있던 그 괴물이 아니었습니다. '프랑켄슈타인' 또한 괴물의 이름이 아닌 그를 창조한 사람의 이름이었습니다. 그 괴물은, 아 뭐라고 불러야 할까요, 이름 조차 없는 존재였습니다.  

 

 

 

시체 조각을 모아 형체를 만들고, 전기로 의식을 만들었습니다. 드디어 생명체가 깨어났을 때, 창조자인 빅토르 프랑켄슈타인은 도망쳤습니다. 자신이 창조한 생명체의 모습이 너무 끔찍했기 때문입니다. 버려진 생물체는 곳곳을 떠돌며 생존 연명하다 어느 농가 헛간에 숨어듭니다. 농가 가족의 단란한 모습에 인간을 이해하고 사랑을 배웁니다. 어떻게든 그 가족 속에 들어가고 싶어하는 갈망으로 가득 찼습니다. 얼마의 시간이 지났고, 그 사이 농가 가족을 엿보고 버려진 책을 구해 읽으며 말과 글을 배웠습니다. 외로움이 극에 달했을 때 용기 내어 가족에게 다가갔습니다. 그러나 그 다정했던 사람들조차도 괴생물체의 끔찍한 외모를 보고 두려워합니다. 자신이 살던 오두막을 도망치듯 떠나버립니다. 

사람들은 생물체를 괴물이라 불렸습니다. 괴물이라 불리니 점점 정말 괴물이 되어갔습니다. 혐오와 따돌림 속에서 분노가 올라옵니다. 2년을 떠돌다 자신을 만들 창조자 프랑켄슈타인과 조우. 자기와 같은 여자 생명체를 만들어 달라고 합니다. 그렇게 하면 남미로 멀리 떠나 다시는 인간 세상에 나타나지 않겠다 합니다. 철저한 고독과 외로움 속에서 도저히 살아갈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처음에는 프랑켄슈타인도 괴물이 겪은 상황을 헤아리며 그 마음을 측은하게 여겼습니다. 악의 고리를 끊기 위해서라도 여자 생명체를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해 작업을 시작했습니다. 다시 시체를 모아 새로운 괴물을 창조하던 가운데, 문득 이런 괴물을 하나 더 창조한다는 게 소름끼쳤습니다. 괴물이 보는 앞에서 여자 생명체를 갈기갈기 찢어버립니다. 마지막 희망을 빼앗긴 생명체는 정말 괴물이 되었습니다. 피의 복수가 시작되었습니다. 괴물은 프랑켄슈타인 둘레 사람을 하나씩 모두 죽여갔습니다.

 

"프랑켄슈타인. 나는 선했고, 내 영혼은 사랑과 박애로 빛났다. 하지만 나는 외롭지 않은가? 참담하게 고독하지 않은가? 내 조물주인 당신이 나를 증오하는데 하물며 내게 아무것도 빚진 바 없는 당신의 동포들은 어떻겠는가? 나를 상대도 하지 않고 증오할 뿐이다." 133

 



책을 덮고나니 눈을 감을 때마다 장면 장면이 떠올랐습니다. 제게는 외로움이 사람을 얼마나 악하게 만드는지 보여주는 책으로 다가왔습니다. 사람은 홀로 살아갈 수 없다는 걸 다시 일깨워주는 이야기였습니다. 만들어졌을 때부터 이름조차 없는 존재였습니다. 사람들은 그저 흉측한 외모 때문에 괴물이라 불리며 피하거나 혐오했습니다. 철저히 인간 사회에서 고립되었고, 기댈 곳은 아무 데도 없었습니다. 결국, 자신을 만든 프랑켄슈타인을 다시 찾았고, 창조주 또한 자기 고통을 당신도 느껴보라는 듯 둘레 사람을 하나씩 제거했습니다. 마지막 프랑켄슈타인이 숨을 거두자, 괴물은 자신도 스스로 삶을 마무라합니다. 비록 서로를 미워했지만, 그래도 자신을 이해하고 인정하는 마지막 존재가 사라지자 괴물도 생을 마감합니다. 원수라는 마지막 관계조차 남지 않자 더는 살아갈 의미를 찾지 못한 겁니다.

 


 

 

메리 셀리가 썼을 당시는 흑인 노예 해방운동이 한참이었다고 합니다. 저자 역시 그 운동에 몸담았다고 합니다. 짐슴보다 못한 노예였던 흑인이 해방되어 백인들과 같은 사회에서 살아갈 때를 상상하며 쓴 작품이라도고 합니다. 금요일 밤 모여 고전을 읽는 우리 또한 '괴물을 인간으로 본 수 있겠는가'에서 시작하여 프랑켄슈타인이 만든 괴물을 'AI'로 생각해보며 끝 없는 이야기가 이어졌습니다. 인공지능과 함께 살아가는 세상에서, 이를 인격적 존재로 볼 수 있겠는가? 

 

 


 

사지는 비율에 맞추어 제작되었고, 생김생김 역시 아름다운 것으로 선택했다. 아름다움이라니! 하느님, 맙소사! 그 누런 살갗은 그 아래 비치는 근육과 혈관을 제대로 가리지도 못했다. 윤기가 자르르 흐르는 흑발은 출렁거렸고 이빨은 진주처럼 희었지만, 이런 화려한 외모는 허여멀건 눈구멍과 별로 색깔차이가 없는 희번득거리는 두 눈, 쭈글쭈글한 얼굴 살갗, 그리고 일자로 다문 시커먼 입술과 대조되어 오히려 더 끔찍해 보일 뿐이었다. 72

 

아름다운 눈, 아름다운 코, 아름다운 입술을 모았어도 아름다운 얼굴이 될 수 없을 겁니다. 사회사업가의 일이 떠올랐습니다. 사람의 욕구를 조각내고, 욕구마다 적절한 (최고의) 서비스를 연결한다고 해서, 완전한 삶을 이룰 수 없습니다. 

 

 

 

 


 

 

책 마지막, 사람들을 죽여간 괴물의 절규가 인상적입니다. 선하게 태어났고, 인정 속에서 자라고 싶었답니다. 아... 더 나누고 싶은 생각이 있으나, 오늘은 여기까지만 쓰겠습니다. 

 

내 친구와 친척 들은 어디에 있는가? 내 유년기를 지켜본 아버지도 없으며, 미소와 부드러운 손길로 나를 축복해준 어머니도 없다. 있다 한들 전생의 내 삶은 이제 시커먼 얼룩, 아무것도 분간할 수 없는 시커먼 빈 공간이 되어버렸다. 기억이 나는 첫 순간부터 이미 나는 그때와 똑같은 키와 덩치였다. 그때까지 나를 닮은 존재도, 나와 관계가 있다고 주장하는 사람도 만나본 적이 없었다. 나는 무엇일까? 그 질문이 또다시 튀어나왔지만, 대답이라고는 신음뿐이었다. 161

 

타락한 천사가 사악한 악마가 되는 법이다. 하지만 심지어 신과 인간의 원수에게조차 외로움을 함께할 친구와 동료가 있다. 나는 철저히 혼자다. 301

 


 

 

이예림, 서울시발달장애인긴급돌봄센터
고진실, <오늘 출근합니다> 저자
강연진, 신사종합사회복지관
임세연, 서울강서초등학교 학교사회복지사 <함께 가는 걸음, 꽃피는 아이들> 저자
김혜지, 휴먼임팩트
조은정, 도봉서원종합사회복지관
김세진, 사회복지사사무소 구슬

 

늦은 밤까지 함께 나눈 선생님들 고맙습니다. 같은 책을 읽었는데 선생님들마다 느낌이 다르고 와닿는 내용도 각각입니다. 선생님들 나눠준 이야기 덕에 생각이 넓고 깊어졌습니다. 멀리 산동네까지 찾아와주어 고맙습니다. 이번 '고전 읽는 사회사업가' 모임이 각자 자기 현장에서 만나는 외로워하는 이들 곁에 조금 더 다가갈 용기 되었기를 바랍니다. 

 

 

우리가 사회 속에서 '괴물'이라 부르는 끔찍한 존재들. 

처음부터 그렇게 악하게 태어났을까? 그 곁에 그를 이해해줄 그 한 사람이 없었던 건 아니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