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퍼비전과 잔소리의 차이
김은진
후배에게 슈퍼비전을 주다 보면 늘 고민하게 됩니다. 내가 하는 슈퍼비전이 후배에게 잔소리로 들리는 것은 아닐까. 저 또한 선배 슈퍼비전이 잔소리로 들릴 때가 있었습니다.
우선 사전적 의미를 정확하게 알아보기 위해 국어사전에서 ‘잔소리’를 찾아보았습니다. 국어사전에서는 두 가지로 잔소리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첫째, 쓸데없이 자질구레한 말을 늘어놓음. 또는 그 말.
둘째, 필요 이상으로 듣기 싫게 꾸짖거나 참견함. 또는 그런 말.
사전적 의미로 보아 잔소리는 명확하게 전달하고자 하는 의미 없이 그저 늘어놓는 말입니다. 상대방이 듣기 싫을 정도로 꾸짖거나 참견하는 말입니다. 저 스스로 이해하기 쉽게 어렸을 적 엄마의 잔소리를 떠올려보았습니다. 제 경험을 비춰보니 제가 한 그 행동이 아니라 다른 과거의 일까지 싸잡아 혼을 내실 때, 말이 길어질 때, 그 말이 나를 공격한다고 느껴질 때 그것을 잔소리로 받아들였습니다. 지나고 보면 엄마 말씀이 다 맞는 말인데도 듣고 있을 때는 그 말들이 와닿지 않았습니다.
우리가 혹시 이런 식으로 슈퍼비전 하지 않았는지 돌아봅니다. 후배를 걱정하는 마음에 사족을 늘어놓지는 않았는지, 최대한 객관적으로 명확하게 말을 전달하는 것이 아니라 구구절절 말이 길어지지는 않았는지, 이때다 싶어 다른 문제점까지 모두 들춰내 꾸짖진 않았는지. 분명 내 마음은 후배를 위한 것이었겠지만, 듣는 후배는 슈퍼비전이 아니라 잔소리로 들었을 겁니다.
그렇다면 슈퍼비전이란 무엇일까요?
슈퍼비전은 라틴어의 ‘super(over, 위에서)’와 ‘videre(watch, 지켜보다)’의 합성어에서 유래된 말입니다.
캠브리지 사전에서는 슈퍼비전을 이렇게 정의합니다.
“the act of watching a person or activity and making certain that everything is done correctly, safely, etc.”
슈퍼비전이란 ‘모든 것이 바르고 안전하게 이루어지도록 하는 행위’입니다. 사회사업 슈퍼비전이란 ‘사회사업 실천을 바르고 안전하게 하도록 돕는 일’입니다.
또한, 슈퍼비전은 ‘규칙·규정에 따라 일을 올바르게 수행하도록 하는 활동’입니다. 사회사업을 바르고(correctly) 안전하게(safely) 하려면 규칙·규정(rule)이 있어야 합니다. 그 기준을 제시하고 안내하는 과정이 바로 슈퍼비전입니다.
「한 번쯤 고민했을 당신에게」 (김은진, 구슬꿰는실) 일부 발췌·수정
분명 선배가 해주는 말은 다 도움이 되는 말일 텐데 슈퍼비전이 아닌 잔소리로 들리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저는 이에 대한 이유를 두 가지 측면으로 나누어 생각해보았습니다.
첫째, 슈퍼바이저인 내가 분명한 철학과 이상이 없기 때문입니다.
위 슈퍼비전 정의와 같이 사회사업 슈퍼비전이란 ‘사회사업 실천을 바르고 안전하게 하도록 돕는 일’입니다. 사회사업을 바르고correctly 안전하게safely 하려면 규칙, 규정rule이 있어야 하며 그 기준을 제시하고 안내하는 과정이 바로 슈퍼비전입니다. 제대로 된 슈퍼비전을 하기 위해서는 먼저 ‘이상과 원칙’이 분명해야 합니다.
내가 생각하는 ‘사회사업 이상’과 내가 일할 때 기준으로 삼는 ‘사회사업 원칙’이 분명한지 먼저 돌아봅니다. 만약 이 두 가지가 없다면 우리는 후배에게 슈퍼비전을 하는 게 아니라 잔소리를 하는 겁니다.
이상은 이루고자 하는 목표 또는 나아가고자 하는 방향입니다.이상은 실무를 규정 통제 평가하는 최상의 기준입니다.
이상이 없거나 모호하면 어느 길로 가야 하는지 알 수 없습니다. 갈 곳을 모르는데 길을 어찌 알겠습니까?이상이 없거나 모호하면 이 길로 가도 되는지 가면 안 되는지 판단할 수 없습니다. 어찌 바르게 통제할 수 있겠습니까?이상이 없거나 모호하면 나아가는지 역행하는지 평가할 수 없습니다. 어찌 오래도록 열심히 행할 수 있겠습니까?
「복지요결」
내가 생각하는 ‘사회사업 이상’이 없다면 후배가 어려움이 있어 질문했을 때 어느 길로 가야 할지, 이 길로 가도 되는지 알려줄 수가 없습니다. 어떻게 해야 사회사업 바르고 안전하게 할 수 있을지 알려줄 수가 없습니다. 슈퍼바이저 자신도 길을 모르는데 슈퍼비전을 어떻게 제대로 할 수 있을까요? 사회사업 이상이 없는 슈퍼바이저는 분명 슈퍼비전을 주며 우왕좌왕할 겁니다. 횡설수설할 겁니다. 그것을 후배가 모를 리 없습니다. 금방 눈치챕니다. 명확한 기준 없이 하는 말들은 분명 잔소리로만 들릴 겁니다. 선배의 지적으로만 들릴 겁니다.
둘째, 선배와 후배 사이에 신뢰가 없기 때문입니다. 내 슈퍼비전을 잔소리로 듣는 후배에게는 내가 콩으로 메주를 쑨대도 믿지 않을 겁니다. 모든 인간관계에서 그렇듯 결국 슈퍼비전 또한 두 사람의 신뢰가 바탕이 되어야 합니다. 이에 더하여 선배가 후배에게 권위* 있는 선배라면, 선배가 주는 슈퍼비전은 물론 사회사업을 벗어난 말조차도 듣고 싶지 않을까요? 선배의 모든 이야기를 귀기울여 듣지 않을까요?
*권위적인 것과 권위 있는 것은 엄연히 다릅니다. 권위적인 선배는 나이가 많고 경험이 더 많은 자신이 곧 법이며 자기 뜻에 따라 후배를 통제하려 합니다. 일방적으로 후배에게 권력을 행사하며 후배의 행동을 제한하고 억압합니다. 그에 반해 권위 있는 선배는 후배에게 올바른 행동의 모범을 보이며, 후배 의견을 존중하되 올바른 사회사업 방법을 제시합니다. 자신감 있고 신뢰받는 선배는 후배에게 권위적이지 않아도 권위가 섭니다.
그렇다면 슈퍼비전이 잔소리가 되지 않게 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슈퍼바이저인 선배만 노력하면 되는 걸까요?
문제는 한쪽에만 있지 않습니다. 분명 후배에게도 어떠한 문제가 있고 그 문제로 인해 슈퍼비전이 잔소리로 들릴 수 있습니다. 바로 들을 준비가 되지 않은 후배인 경우입니다. 선배의 슈퍼비전을 받아낼 그릇이 간장 종지 만한 경우나 들을 준비가 되어있지 않은 경우처럼 준비되지 않은 후배에게는 아무리 사회사업 이상을 가지고 슈퍼비전하는 선배의 말일지라도 잔소리로 들릴 겁니다. 반대로, 들을 자세가 되어있고 그릇이 넉넉한 후배에게는 다소 부족한 선배의 말도 슈퍼비전으로 받아들여질 겁니다.
슈퍼비전을 받아들이는 것은 상대적이기 때문에, 선배인 나도 준비가 되어있는지 살펴야 하지만 후배의 자세 또한 살펴야 합니다. 준비되지 않은 후배에게 슈퍼비전을 주어야 한다며 억지로 매달리고 스트레스 받을 필요는 없습니다. 제가 후배일 때를 돌이켜보니 후배 관점에서 슈퍼비전이 필요할 땐 어떤 문제나 고민에 대해 배우고자 하고 알고자 하는 갈급함이 있을 때였습니다. 후배가 듣고자 하는 준비가 되어 있는가, 후배가 듣고 싶어 하는 이야기인가에 따라 선배의 어떤 말은 슈퍼비전이 되고 어떤 말은 잔소리가 되기도 합니다.
후배에게 이 주제를 가지고 질문해보았습니다. 후배는 자신이 물어보지 않았는데 참견하며 말하는 것은 잔소리로 들리고, 도움이 필요해 요청했을 때 그것을 해결할 수 있도록 조언해주는 것이 슈퍼비전이라고 생각한다고 합니다. 이야기를 듣고 보니 그럴 수도 있겠다 싶습니다. 하지만 선배로서 때로는 후배가 먼저 질문하지 않았어도 슈퍼비전 해야 하는 때도 있습니다. 후배로서는 자기가 듣고 싶은 이야기만 선배가 해주기를 바랍니다. 하지만 선배로서는 후배가 이 정도 연차라면 알아야 하는 것을 알려 줄 의무가 있습니다. 때로는 후배가 묻지 않았어도 선배로서 해주고 싶은 이야기도 있습니다. 후배가 원하는 것과 선배가 원하는 것이 다를 경우 아무리 선배가 이상에 빗대어 설명한다 해도 후배에게는 그것이 잔소리로 들릴 수 있습니다. 하지만 선배가 후배와 이러한 일로 갈등을 빚더라도 선배가 하려는 말에 당위성이 있다면 슈퍼비전이 필요합니다.
이럴 때는 선배가 하려는 이야기가 후배에게 왜 필요한지 충분히 이해할 수 있게 설명해주고 이야기를 시작하면 좋겠습니다. 슈퍼비전은 후배가 원하는 것만 해줄 수 있는 일이 아니라 후배가 원치 않더라도 때때로 선배로서 해야 할 이야기가 있음을 설명해주면 좋겠습니다. 그렇게 해야 일방적인 잔소리가 아니라 슈퍼비전이 될 수 있습니다.
더하여 슈퍼비전은 말이 아닌 글로 주고받는 것이 좋겠습니다. 후배는 ‘이러한 문제가 있는데 어떻게 해야 할까요?’ 하며 자기 고민과 질문을 선배에게 넘겨버립니다. 이것은 바람직한 슈퍼비전 요청이 아닙니다. 후배가 고민하는 무언가가 있다면 그 질문에 대한 자기 답을 생각이 나아간 데까지 써보게 합니다. 그 질문에 선배가 일일이 답해주기 전에 후배 스스로 공부하게 해봅니다. 그래야 후배도 깊이 고민해보고 공부할 수 있습니다. 아무리 선배가 분명한 이상과 철학을 가지고 슈퍼비전 하더라도 그건 선배의 답입니다. 후배가 자기 답을 찾아 나갈 수 있도록 돕습니다.
슈퍼비전과 잔소리의 명확한 차이를 저는 아직 잘 모르겠습니다. 그저 슈퍼바이저가 사회사업 이상이 분명하고 선배와 후배의 신뢰 관계가 두텁다면 후배에게 전하는 말들이 무게가 실려 마음에 깊이 남을 거로 생각합니다. 슈퍼바이저라면 ‘이게 잔소리로 들리지 않을까?’ 고민만하기보다는 자신의 사회사업 이상을 정리해보고 그에 비추어 슈퍼비전 하면 되지 않을까요? 더하여 권위 있는 선배가 되기 위해 노력도 하고요. 후배에게 당장은 잔소리로 들릴지라도 언젠가 마음에 남은 그 말들을 꺼내어 곱씹어 보게 될 겁니다. 후배는 선배의 잔소리 같은 슈퍼비전을 탓하기보다 내가 들을 준비가 되어있는지 생각해보면 좋겠습니다. 내가 어떤 마음가짐으로 선배의 말을 듣는가에 따라, 같은 말이더라도 잔소리가 되기도 하고 슈퍼비전이 되기도 하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