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활동센터 소그룹 프로그램 일지
이혜미
말아톤복지재단 서울영동주간보호센터
벚꽃 나리는 4월, 첫 번째 나들이 (2022.4.)
오늘 아침 조회 시간이 박수 소리와 웃음으로 시끌벅적합니다. 바로 지난주 직접 투표한 결과로 벚꽃 나들이를 가는 날이기 때문입니다. 평소보다 일찍 점심 식사하고 준비했습니다. 규연 씨가 “벚꽃!”, “카페!”를 연신 외치며 준비에 분주합니다. 재윤 씨는 더 빨리 준비하고 벌써 옷까지 입었습니다. 정훈 씨도 교통카드를 잘 챙겼는지 확인합니다. 동미 씨는 아직 실감이 안 나는지 자신만의 속도로 천천히 준비합니다.
학동역에서 7호선을 타고 분당선으로 갈아타 도곡역 양재천으로 향했습니다. 지하철 개찰구에서 직접 교통카드를 찍도록 권했는데 늘 누군가가 해주었는지 카드를 세로로 놓아야 하는지 가로로 놓아야 하는지 어려워했습니다. 이럴 때가 기회이기에 예정보다 시간이 지체되더라도 왕복에 환승까지 교통카드 찍을 때마다 직접 하도록 권했습니다. 카드 찍기를 스스로 하니 마지막엔 처음보다 잘 찍습니다. 센터 안에만 있으면 할 수 없는 일입니다. 자주 밖에 다니며 알려 드리면 자연스럽게 할 수 있습니다.
도곡역에 내려 양재천까지 가는 길은 지도를 잘 보는 정훈 씨 핸드폰으로 찾아봤습니다. 저보다 방향을 잘 압니다. 정훈 씨에게 물어보니 쉽게 찾아갔습니다. 양재천에 들어서자 하늘을 뒤덮은 벚나무를 만났습니다. 정훈 씨가 제일 먼저 감탄 하자 재윤 씨는 더 큰 소리로 “우와!” 외칩니다. 그 소리에 깜짝 놀란 동미 씨가 올려다보자 머리 위를 덮은 벚꽃 잎들이 바람에 날립니다.
우리가 벚나무 앞에 멈춰 사진을 찍는데 지나가던 사람들이 가만히 기다려주었습니다. 사진을 다 찍은 뒤 기다려준 사람들에게 직접 인사해보라고 이용자분들 옆구리를 쿡쿡 찔렀습니다. 재윤, 정훈, 규연 씨와 함께 큰 소리로 “감사합니다.” 했습니다. 누군가에게 배려 받았다면 당사자가 직접 고맙다고 표현하는 것도 좋습니다.
양재천을 걸으며 실컷 벚꽃 구경하고 카페에서 차 한잔했습니다. 재윤 씨가 앉고 싶은 자리를 선택합니다. 정훈 씨와 규연 씨가 꽤 친해진 듯 나란히 앉습니다. 제가 굳이 “여기 앉으세요.”, “저기 앉으세요.”라며 지정해 주지 않았습니다. 당사자끼리 자유롭게 앉는 모습이 좋아 보입니다.
카페에서 만 원 이상 결제하니 복권을 사람 수만큼 서비스로 줬습니다. 별다른 설명 없이 “할래요?” 묻고 동전을 드리니 자세를 잡고 복권을 살살 긁습니다. 내심 ‘어? 어떻게 긁을 줄 알지?’라며 놀랐습니다. 저에겐 새로운 모습이지만 당사자분들은 이미 할 수 있는 것들입니다.
당사자를 관리 대상으로만 본다면 이런 모습을 놓칠 수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일단 밖으로 나와 친구처럼 계획이든 우연이든 사소한 것까지 함께하니 서로에 대해 더 알아가고 재미도 있습니다.
규연 씨가 아메리카노 한 잔에 당첨된 쿠폰을 가지고 있다가 어머니께 드렸습니다. 어머니는 “우리 규연이 최고!”라며 고맙다는 표현으로 아들을 안아줬습니다. 카페에서 받은 복권은 사소한 연결고리 같지만 아들에게 선물 받은 어머니 미소를 보니 함께 마음이 따뜻해집니다.
4월 벚꽃잎 흔적, 두 번째 나들이 (2022.4.)
오늘은 지난주에 이어 두 번째 팀과 서울숲으로 벚꽃 나들이를 갑니다. 사실 한 주 동안 비가 내렸고 바람이 불어 벚꽃잎이 많이 떨어졌습니다. 아차 싶었습니다. 서류상 주 1회 진행하는 프로그램이어도 이런 특별한 시기엔 이틀 연속으로 계획하면 더 좋았을 텐데 말입니다. 괜히 일주일 간격으로 계획을 잡아 당사자분들에게 미안했습니다.
이번 나들이는 차를 타고 갑니다. 오늘 가시는 분들은 세심한 지원이 필요합니다. 차에 올라타고 내릴 때 조심 할 뿐 아니라, 휠체어도 가져가야합니다. 안전을 위해 손길이 추가로 필요한데 지원해 줄 사람이 부족합니다. 마침 우리 센터 지킴이, 듬직한 정훈 씨가 생각났습니다. 정훈 씨에게 함께 가서 도와 달라 부탁하자 흔쾌히 좋다고 합니다. 오늘만큼은 ‘이정훈 선생님’이라 불렀습니다. “아이, 왜 그러세요.”라며 쑥스러워하지만 입가 미소는 숨길 수 없습니다. 책임감이 강한 정훈 씨는 외출 전 미리 휠체어에 묻은 먼지를 깨끗하게 닦아주고 다른 사람 가방도 옮겨주며 채비를 함께 했습니다.
차에 타는 것부터 쉽지 않았습니다. 수민 씨는 올라타는데 시간이 꽤 걸렸습니다. 성훈 씨는 편마비로 오른발에만 힘을 주기 때문에 몸을 받쳐 줘야 합니다. 상희 씨는 전적인 도움이 필요해 끌어안고 타야 합니다. 안전히 잘 탑승했음에도 긴장됐습니다. 거동이 불편한 분들과 나들이를 가는 것은 오랜만이라 담당자인 저는 걱정이 앞섰습니다.
그러나 차만 탔음에도 우렁찬 박수 소리로 좋아하는 이용자분들을 보며 제 태도를 다잡았습니다. 관리감독자가 되지 않으려 마음을 가다듬었습니다. ‘이러면 안 된다.’, ‘저러면 안 된다.’, ‘무엇을 조심해야 한다.’라며 도착 전부터 잔소리를 늘어놓지 않았습니다. “즐겁게 놀다 옵시다!”라는 한마디만 하고 신나는 댄스 음악을 틀어드렸습니다.
금요일 오후 서울숲은 사람들로 북적였습니다. 예상대로 벚꽃 잎이 흩날리고 초록 잎이 더 많이 보입니다. 그래도 하늘에서 눈이 내리는 것 같이 풍경이 예뻤습니다. 서울숲을 가득 채운 초록 잎들을 보며 봄을 물씬 느낄 수 있었습니다.
연서 씨는 정훈 씨에게 딱 붙어 다니며 사진을 찍었습니다. 정훈 씨는 고개를 푹 숙이고 걷는 연서 씨에게 “저기 보고 웃어요!”라며 함께 자세를 취합니다. 연서 씨는 자신을 챙겨주는 정훈 씨가 좋은지 웃음이 끊이질 않습니다. 브로맨스가 따로 없습니다.
수민 씨는 뒷짐 지고 산책로를 걷다가 벤치에 앉아 잠시 생각에 빠지기도 했습니다. 카메라를 들이대니 씩 하고 웃어줍니다.
상희 씨는 고개를 이리저리 돌리다가 한 곳에 시선이 잠시 멈췄는데 토끼가 있었습니다. “상희 씨, 토끼 보고 싶어요?”라며 가까이 휠체어를 끌었습니다. 발화는 어렵지만 상희 씨 시선을 따라가니 동물을 좋아 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몸의 장애가 중증일지라도 당사자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알아가는 방법은 분명 있습니다.
호기심 많은 막내 성훈 씨는 서울숲 넓은 길 쪽으로 활보하며 자유를 만끽합니다. 갑자기 환호성 지르며 박수 소리를 크게 내는 바람에 지나가던 어르신이 놀라기도 했습니다.
우리는 서울숲 벚나무를 보러 함께 갔지만 각자 취향대로 구경했습니다. 몰려다니지 않고 친구처럼 원하는 곳으로 다녔습니다. 당사자에게 어디로 갈지 물어보며 산책 방향을 정하고, 표현이 어려운 분과는 눈을 맞추어 시선이 가는 곳으로 향했습니다. 그러다 보면 각자가 좋아하고 즐기는 방법이 보입니다. 당사자를 안전하게 지원하는 범위 내에서 소그룹으로 다니면 알 수 있습니다.
일정 마지막까지 정훈 씨가 도와줬습니다. 오늘 지원자 역할을 톡톡히 해준 덕분에 안전하고 자유롭게 시간을 보냈습니다.
그럼에도 다음을 위한 고민이 있습니다. 오늘 팀에는 모두 거동이 불편해 차량과 짝꿍이 꼭 필요했습니다. 이용자 4명과 선생님 3명, 정훈 씨까지 1:1 지원으로 계획했기에 충분히 즐길 수 있다고 여겼습니다. 하지만 갑작스런 화장실 지원 등 예상치 못한 상황이 벌어지니 “가지 마세요.”, “안돼요.” 라는 말이 툭툭 튀어 나왔습니다. 다르게 표현할 수도 있는데 상황이 급하니 부정적인 말 먼저 생각났습니다.
‘아, 왜 하필 지금 화장실을 가야 해서 이렇게 힘들게 하지?’
제 속마음에 순간적으로 떠오른 말입니다. 장애인이 아니라 그냥 사람으로서 일상을 지내는 것인데, 어떤 도움이 얼마쯤 필요한 것이 마치 ‘문제’처럼 느껴질 때가 있습니다.
센터장님 슈퍼비전을 나누며 배웠습니다. 화장실 지원이 걱정된다면 미리 염두에 두는 것도 우리 일이고, 인력 구성을 달리하면 되는 일입니다. 1:1 지원보다 2:1 지원이면 되는 일입니다. 제 조급함으로 순간 당사자분을 탓했습니다. 「복지요결」에 이런 문장이 있습니다.
‘몸의 장애는 사회사업에 별 의미가 없습니다.’
때때로 중증 장애가 있는 분들과 외출할 때면 걱정이 앞섭니다. 인력이나 환경이 따라주지 못하는 구조적 이유 때문인데, 미안해하지는 못할망정 내심 당사자 ‘몸의 장애’를 탓할 때가 있습니다. 좋은 계획을 세우고 인력이 충분치 못해 아쉬운 것은 당사자 쪽 문제가 아닌 사회사업가인 우리가 고민할 몫입니다.
금천 AAC 마을 탐방기 (2022.7.)
7월 주제는 ‘소통’입니다. 우리 센터 이용자 분들 다수는 발화가 어렵습니다. 하지만 소통은 말로만 가능한 것이 아님을 나눴습니다. 수민 씨 초롱초롱한 눈빛, 상희 씨가 손가락을 깨무는 것, 성훈 씨 박수 소리, 연서 씨 ‘에’ 소리 등 모두 의미가 들어있는 소통임을 나눴습니다.
사회사업가인 우리에게 하는 말이기도 합니다.
특별히 외부활동으로 지역주민과 소통을 잘하고 싶어 하는 마을을 찾았습니다. 바로 ‘금천 장애인 복지관’ 주변 마을입니다. 어떤 곳인지 먼저 전화로 알아보았습니다.
“제가 당사자분들에게 마을 소개를 먼저 해드려도 될까요? 복지관 전체도 둘러보셨으면 좋겠어요. 기념 선물을 준비하려는데 몇 분 오세요?”
당사자들을 환영하는 말투에 기분 좋아집니다. 일정을 정한 후, 차타고 갔습니다. 금천구는 처음 가봅니다. 낯선 곳은 설렘과 긴장을 함께 느끼게 합니다. 복지관에 도착하자 낯가리는 연서 씨가 미간을 찌푸리며 주변을 살피곤 차에서 안 내립니다. 재윤 씨도 긴장한 듯 몸이 뻣뻣해집니다. 동미 씨 눈이 휘둥그레집니다. 이지연, 이정훈 씨가 다른 사람을 도와 모두 차에서 내리니 복지관 조끼를 입은 선생님이 인사합니다. 이름이 ‘이지연’입니다. 이지연 이용자와 동명이인입니다.
“지연 씨, 여기 선생님 이름도 이지연이래요!”
지연 씨가 명함 한번, 선생님 얼굴 한번 쳐다보곤 씩 웃습니다. 이동하는 동안 이지연 씨 이름을 세 번은 불렀는데 그럴 때마다 선생님과 이지연 씨가 서로 쳐다보고 웃습니다. 이용자분이 처음 보는 사람과 웃으며 소통하는 모습을 보니 지켜보는 담당자인 저도 덩달아 기분 좋아집니다.
금천 장애인복지관 건물은 전부 색과 상징 카드로 돼 있습니다. 보편적으로 모두를 배려한 흔적입니다. 먼저 세미나실에서 AAC가 무엇인지 설명 듣고 주변 마을에서 어떻게 하는지 경험해 보기로 했습니다. 근처 도넛 카페에서 상징 카드를 활용해 직접 주문하는 것입니다. 카페 이야기가 나오자 커피를 사랑하는 동미, 정훈 씨 표정이 밝아집니다.
AAC 카페에 도착했습니다. 규칙은 침묵 주문입니다. 말을 할 수 있어도 침묵하고 상징 카드를 이용하는 것입니다. 손가락으로 메뉴 그림을 가리켜 원하는 것을 주문해 보는 것입니다.
정훈 씨가 먼저 나섰습니다. 손가락으로 ‘아이스’, ‘아메리카노’, ‘한 잔’, ‘주세요.’ 카드를 가리키자 사장님이 메뉴가 맞는지 되물었습니다. 정훈 씨는 자신이 잘 해냈다는 듯 밝은 목소리로 “네!” 합니다.
연서 씨 차례입니다. 긴장해서인지 습관적으로 맞잡는 손가락을 좀처럼 떼지 않습니다. 스스로 하실 것을 권했지만 거부했습니다. 사장님이 웃으며 “괜찮아요.” 합니다. 아쉬웠지만 요즘 이곳저곳에 키오스크도 있으니 자주 나와서 해보면 됩니다.
재윤 씨 차례입니다. 뒤에 다른 손님이 들어 왔습니다. 천천히 주문하는 모습이 피해가 된다는 생각에 조급해졌습니다. “재윤 씨, 빨리 골라야 해요. 뒤에 손님 기다리잖아요.”라며 재촉했습니다. 하지만 끝까지 본인이 하겠다며 제 손을 툭 치고 여유롭게 메뉴판을 봅니다. 점점 표정이 굳어지는 저를 보곤 사장님이 “괜찮아요. 뒤에 손님이 기다리시면 돼요.”라며 안심시켜줍니다. 민망하면서도 재윤 씨가 내심 야속했습니다.
뒤에서 지켜보던 눈치 빠른 지연 씨는 차례가 되자 신속하게 ‘아이스티’, ‘한잔’, ‘주세요.’ 카드를 가리키며 주문했습니다. 잘하셨다고 엄지를 치켜세우니 뿌듯한 듯 어깨를 으쓱합니다.
각자 속도대로 소통하며 주문하는 이용자분들이 자랑스러웠습니다. 익숙하지 않은 분들도 있었지만 처음 보는 낯선 아저씨(사장님)를 독대하며 계산대 앞에 홀로 선 자체만으로 잘 해낸 것입니다. 완벽하게 주문해야만 잘한 건 아닙니다. 각자 할 수 있는 영역과 범위가 다르기에 칭찬과 격려하는 장면도 모두 다릅니다. 센터 안에서 연습만 한다고 되는 일은 아닙니다. 지역사회에 직접 나가 당사자가 좋아하는 일로써 자기 일상에 가깝게 자주 경험해야 잘 할 수 있음을 느낍니다.
금천 AAC 마을을 구경하고 센터로 향하는 차 안이 술렁입니다. 이지연 사회복지사가 건네준 기념 선물에는 대체 의사소통 상징으로 만든 바리스타 교육 책자와 일기장이 있었습니다. 지연 씨가 가방에 챙기고 정훈 씨도 일기를 쓰겠다며 집에 챙겨갔습니다. 오늘 당사자분들에게 즐거운 추억이자 소통할 수 있는 시간을 드린 것 같아 제 마음도 좋습니다. 그리고 잊지 않고 재윤 씨에게 사과했습니다.
“아까 빨리 하라고 짜증내서 미안해요. 조심할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