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죄를 행했던 당사자, 도와야 할까?
김은진
복지관 사회복지사로서 당사자를 돕다 보면 여러 어려움에 처해 있는 분들을 만납니다.
다양한 분들을 만나다 보면 사회복지사가 도와야 할 당사자인지 딜레마에 처할 때도 있는데요.
만약 내가 만난 당사자가 범죄를 행했던 사람이라면, 어떨까요?
2021년, 파렴치 범죄로 10년간 교도소 생활을 마치고 출소한 아동 성범죄자 조두순이 생활고 때문에 자신이 거주하는 시에 기초생활수급자 신청을 했다고 합니다. 만 65세 이상으로 기초연금까지 챙겼습니다. 만 65세를 넘긴 조두순은 근로 능력이 없는 노인으로, 배우자는 만성질환 등으로 취업이 힘든 상태로 보고 있어 시에서는 조두순 부부의 기초생활보장수급 자격을 통과했습니다.
시는 조두순이 만 65세를 넘어 근로 능력이 없고, 배우자는 만 65세 이하이나 만성질환과 취업 어려움이 있는 데다 소유 주택도 없어 조건이 맞기 때문에 복지급여 지급 대상에서 배제할 수 없다고 결론 내렸다고 합니다. 이 문제로 국민청원 게시판에 ‘조두순에게 기초생활수급지원금 주지 마세요’라는 청원이 올라오기도 했습니다. 인터넷에서 갑론을박이 벌어질 정도로 시끄러운 일이었습니다.
만약 내가 이 사람을 도와야 하는 사회복지사라면 어떻게 해야 했을까요? 어떤 사람들 말처럼 끔찍한 범죄자에게 국민이 내는 세금 쓰게 하는 것은 말이 안 되는 일일까요? 아니면 범죄자여도 똑같은 국민이니 다른 이들과 같은 도움을 받는 게 옳은 걸까요?
2022년 종영한 드라마 <내일>은 죽은 자를 인도하던 저승사자 팀 중에서 이제는 죽고 싶어 하는 사람(자살예정자)을 살리는 ‘위기관리팀’이 고군분투하는 내용입니다. 이 드라마 8회에서는 자살하고 싶어 하는 사람들을 인터넷에서 모아 돈벌이 수단으로 사용하는 자살 브로커 ‘송진호’가 등장하는데요. 위기관리팀에서는 자살예정자 ‘송진호’를 살려야 하는 순간에 놓입니다.
위기관리팀 막내 ‘준웅’은 죽고 싶어 하는 사람들의 마음을 돈벌이 수단으로 여기는 범죄자 ‘송진호’를 살릴 수 없다고 말합니다.
이에 위기관리팀 팀장인 ‘련’과 대치하게 되지요.
위기관리팀 팀장 ‘련’은 범죄자를 돕지 않으려는 ‘준웅’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설령 범죄자일지라도 그 사람이 삶을 포기하려 하면 구하는 게 우리 일이야.”
이 드라마에 나오는 준웅과 련 중 누가 더 옳은가를 따질 수는 없습니다. 그저 같은 일을 하는 두 사람 가치관이 다를 뿐입니다.
자기 삶에서 어느 것에 가치를 두느냐에 따라 내가 도울 일인지 아닌지 판단이 달라질 겁니다.
직업적 딜레마에 빠지는 것은 사회복지사뿐만이 아닙니다. 의사, 소방관, 변호사 등 이외에도 우리와 비슷한 딜레마가 있을 직업은 많습니다. 의사는 의술로 사람 살리는 일을 하는 사람입니다. 만약 남을 해치다가 사고가 나서 실려 온 범죄자라면 의사는 이 사람을 치료해야 할까요, 하지 않아야 할까요?
소방관은 불을 끄고 사람 구하는 일을 하는 사람입니다. 만약 고의로 방화를 저질러 사람들을 다치게 하고 분신을 시도한 사람이 있다면 소방관은 그를 도와야 할까요, 돕지 않아야 할까요? 변호사는 다툼에 관련한 사건이 발생할 때 그 사람을 대신해 재판에서 그들을 변호해주는 활동을 하는 사람입니다. 변호사가 원하지 않았어도 가해자(피고인)를 변호해야 하는 일도 있습니다. 이럴 땐 어떻게 해야 할까요?
“그런 분들(피고인)은 아무도 자기편을 안 들어주면 마지막으로 기댈 수 있는 게 변호사거든요. 근데 변호사가 그 사람이 사회적으로 지탄받는다고 해서 변호를 거부한다, 그러면 어떻게 될까요? 이건 이렇게 비유하고 싶어요. 응급의학과 의사에게 급한 환자가 들어왔는데 이 사람이 파렴치한 범죄자예요. 그럼 이 사람이 나쁜 사람이니까 치료 못 하겠다면서 죽게 놔둘 거에요? 치료하잖아요. 환자가 좋은 사람이든 나쁜 사람이든 일단 치료하는 게 의사잖아요. 변호사도 마찬가지라고 봐요. 사회적으로 비난받는 사람이라 할지라도 그 사람도 변호 받을 권리가 있단 말이죠.”
JTBC <다수의 수다> 3회 ‘변호사 편’ (2021.11.26.)
의사나 변호사가 상대가 누구든 간에 일단 치료하고 변호하는 것처럼 사회복지사도 당사자를 무조건 돕기에는 무언가 걸립니다.
앞서 비교한 여타 직업과 사회복지사는 비슷한 듯하지만 가장 큰 차이점이 있기 때문입니다.
사회복지사는 ‘한 사람’만 돕는 것을 넘어 ‘사람 사이를 좋게 하는 일’을 하는 사람입니다. 사람 사이 관계를 위해 연결하고 주선하는 역할을 합니다. 그러므로 범죄를 행했던 당사자를 돕는 일이 쉽지 않습니다. 당사자만 돕는다면 이런 고민을 할 필요가 없을지도 모릅니다. 그저 필요한 물품 가져다드리고 필요한 서비스 연결해드리면 그만이겠지요. 그러나 ‘관계 주선’은 자칫 위험할 수 있습니다.
범죄를 행했던 당사자를 이웃과 더불어 지내게 주선할 수 있을까요?
혹시 내 주선으로 인해 다른 주민이 위험에 빠지지는 않을까 염려스럽습니다. 물론 오래 봐왔거나 나와 충분히 신뢰할만한 관계라면 이야기는 또 달라질 수 있겠으나 쉽진 않을 겁니다. 이런 경우 사회복지사에게 관계주선은 부담이 큽니다.
사회복지사 윤리강령에서 전문가로서의 자세를 이렇게 말합니다.
“사회복지사는 클라이언트의 종교, 인종, 성, 연령, 국적, 결혼상태, 성적 지향, 경제적 지위, 정치적 신념,
정신·신체적 장애, 기타 개인적 선호, 특징, 조건, 지위를 이유로 차별 대우를 하지 않는다.”
이렇듯 윤리강령을 기준으로 본다면 사회복지사는 당사자가 누구든 도와야 합니다. 교도소에 다녀온 분들은 가족이나 친구 등 사람 관계가 끊어진 경우가 많습니다. 이들이 사회적 관계가 잘 되어있었다면 범죄를 저지르지 않았을 수도 있습니다.
설령 범죄를 저질렀다 하더라도 이후 사회적 관계를 통하여 공동체 일원으로 잘살아갈 수 있을 겁니다.
‘사회적 유대’ 개념에는 네 가지가 있는데 가까운 지인과 애정과 관심으로 연결되는 ‘애착’, 실현 가능한 목표를 향해 정진하는 ‘전념’, 공동체에 소속되어 활동하는 ‘참여’, 도덕적 윤리와 법 등을 준수해야 한다고 믿는 ‘신념’이 그것입니다.
사회복지사가 이 사회적 유대 개념 네 가지를 만들 수 있게 돕는다면 범죄를 저지른 당사자라 할지라도 공동체에 속해 함께 살 수 있을 겁니다.
원칙은 이렇습니다만, 여러 가지 상황, 사람과 사안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원칙을 지켜 잘 돕고자 하는 기준도 필요하지만, 기관과 사회복지사의 상황, 역량, 적절한 슈퍼바이저 유무도 살펴야 하고 주민 정서, 상황도 고려할 수밖에 없습니다. 사회복지사와 주민 또한 보호받아야 합니다.
사회복지사를 보호합니다.
윤리강령이 있긴 하지만 사회복지사 개인이 갖는 가치 철학이 있습니다. 사회복지사는 당사자와 감정을 주고받습니다. 그렇기에 더욱 사회복지사 개인 신념이 중요할 수밖에 없습니다. 만약 성범죄 가해자에 대해 극도로 예민한 사회복지사라면, 그러한 당사자를 만났을 때 감정을 주고받기 어려울 겁니다. 이럴 때는 사회복지사가 선택할 수 있도록 기관 차원에서 도울 수 있습니다. 다른 사회복지사가 이 당사자를 도울 수 있겠지요.
또한, 기관에서 업무를 맡길 때 새내기보다는 실력과 경험이 풍부한 사회복지사를 선택하여 여러 상황에 대비합니다. 좋은 슈퍼비전 체계도 기관에서 준비되어 있어야겠지요. 범죄를 행했던 당사자를 만날 때에는 최소한 두 명 이상이 함께 만나거나 탁 트인 공간에서 만나는 등 여러 안전장치를 마련합니다.
주민을 보호합니다.
주민 정서 상황 등에 따라 범죄를 행했던 당사자를 조심스럽게 주선합니다. 당사자와 둘레 사람 관계를 어떻게 가꿔갈 것인지 충분한 고민이 필요합니다. 내 주선으로 인해 혹시나 또 다른 범죄가 생기지는 않을지 걱정스럽습니다. 당사자와 충분한 신뢰 관계가 없다면 주민들과 직접 접촉은 부담스럽습니다. 직접 접촉하지 않더라도 만날 수 있는 온라인 모임 등으로 조금씩 주선합니다.
강감찬관악종합사회복지관 이가영 부장님은 실제 자기 당사자를 이렇게 도왔다고 합니다. 당사자가 거부하여 성사되지는 않았지만, 주민과 함께 하는 온라인 독서 모임에 오시기를 몇 차례 제안했다고 합니다. 물론 온라인으로라도 당사자를 거부하는 주민이 있을 수 있겠으나 직접 만남보다는 위험 부담이 줄어듭니다.
우리가 만났거나 만나는, 혹은 만나게 될 범죄를 행했던 당사자가 모두 같지는 않을 겁니다. 한때 범죄를 저질렀지만, 자신의 죄를 뉘우치고 열심히 살아보고자 하는 사람이라면 어떻게 도와야 할까요? 우리가 어떤 기준으로 그런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을 구분해서 도울 수 있을까요? 참 어렵습니다.
사회복지사는 사람 사이를 좋게 하는 일을 합니다. 만약 범죄를 행했던 당사자에게 공동체가 있었다면 범죄를 저지르지 않았을 수도 있습니다. 동네에 아는 사람이 많아지면 범죄를 저지르기 어려울 겁니다.
결국, 우리는 사회복지사이기 때문에 공동체를 붙잡을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가 하는 일이 그렇듯 이 질문 또한 정확한 답은 없습니다. 잘 모르겠습니다. 그저 원칙이 있고 그에 따라 일하지만 언제나 사람 상황 사안에 따라 변통할 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