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 체험 프로그램, 당사자를 더 잘 이해할 수 있을까요?
고진실
<오늘 출근합니다> 저자
장애인복지기관에 입사하자마자 신입 직원 교육을 받았습니다.
법인이나 기관 사업 소개를 중심으로 한 자체적인 교육과 타기관과 연계하여 진행하는 장애 이해 교육으로 구성되었습니다. 그때 장애 이해 교육을 위해 서울의 어느 장애인복지관을 방문했습니다. 해당 기관에서는 장애 이해를 돕기 위한 체험 프로그램을 운영했습니다. 지역 주민을 비롯하여 체험을 희망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신청 후에 참여할 수 있습니다. 기관 안에는 장애 체험을 위한 장소가 별도로 마련되어 있었습니다. 한눈에 보기에도 큰 비용을 들여 만든 공간입니다. 다양한 구조물과 도구가 눈에 들어왔습니다.
지체장애, 시각장애, 청각장애, 발달장애(인지적 장애) 체험을 한 번에 할 수 있도록 설계된 곳입니다. 한 바퀴를 도는 데 약 1시간 정도 걸렸습니다. 담당 사회복지사의 이런저런 설명과 사전 장애인식개선교육을 포함하면 1시간 30분 정도 될 것 같습니다(장애인복지관에서 왔으니 기본적인 이해가 있음을 전제하고 간략하게 설명했을 겁니다).
장애 당사자를 이해하는 데 어느 정도의 시간이 필요할까요? 1시간 30분이면 충분할까요? 만약 부족하다면 3시간? 하루? 일주일이면 될까요?
서로를 이해하는 것과 알고 지낸 시간이 반드시 비례하는 것은 아닙니다.
상대를 이해한다고 말하는 수준, 그 깊이 또한 천차만별이기에 필요한 시간에 정답은 없습니다. 다만 주의할 것은 섣부른 판단과 잘못된 이해일 겁니다. 특히 사회복지사는 거듭 생각하여 노력으로 바로 잡아갈 필요가 있습니다. 장애를 어떤 시각으로 바라보고 어떻게 이해하느냐에 따라 우리의 실천 방법이 달라집니다. 지역사회에서 당사자를 대하는 말과 행동으로 이어집니다.
지금도 복지관에서 장애인식개선사업의 일환으로 장애 체험을 하는 곳이 많습니다. 최근에는 발전된 기술을 접목한 VR장애 체험도 가능합니다. 기기를 착용하면 스크린에 휠체어에 앉아 있는 내가 보이고, 길 건너 편의점까지 바퀴를 굴려 이동합니다. 높은 진열대에 있는 물건을 집어 계산합니다. 앞에서 체험하는 동료를 바라보니 오락실에서 즐기는 자동차 레이싱 게임이 떠올랐습니다. 아무리 실감나게 잘 만들었어도 진짜 운전과 비교할 수 없습니다. 차종 속도 지면 상태, 운전 숙련도와 습관에 따라 승차감부터 다릅니다. 장애 체험, 그것이 당사자의 개인적인 경험과 얼마나 비슷할지 잘 모르겠습니다. 과학 기술은 저만치 발전했는데 장애에 대한 사회 인식은 과거와 얼마나 달라졌을까요.
한국장애인개발원에서 발행한 2023 장애통계연보를 보면 장애인에 대한 사회의 차별 인식 정도는 약간의 변화가 있으나 연도에 상관없이 ‘약간 많다’, ‘매우 많다’가 전체 비중의 60% 이상을 차지합니다. 2020년 코로나19로 인해 연구 모집단이 바뀐 것을 고려하면 큰 차이를 확인하기 어렵습니다.
당사자를 이해하고 싶은 마음, 물리적으로 비슷한 환경을 만들어 경험함으로써 상대의 상황이 되어보려고 하는 그 의도를 압니다. 중요한 가치입니다. 그래서 더욱 방법이 그 의도를 잘 살리고 있는지 성찰합니다. 더 나은 다른 방법이 없을지 고민합니다.
장애인을 위한 제도 정책 편의시설이 늘어도 어쩐지 인식은 그대로인 것 같습니다. 복지관이 있고 당사자가 사는 지역사회 변화조차 쉬운 일이 아닙니다. 우리가 하는 일이 정말 장애에 대한 인식을 바꾸는 데 기여하고 있을까요? 오히려 잘못된 인식이나 감상을 만들어 오해를 생산하는 것은 아닌가요?
장애를 체험해봤습니다?
체험은 자기가 몸소 겪은 일이나 경험입니다. 제가 참여했던 장애 체험 프로그램은 약 90분 짜리 였습니다. 90분 휠체어를 탄 것만으로 실제 휠체어를 이용하는 지체장애 당사자의 일상 속 경험을 나도 해봤다고 말할 수 있을까요? 짧은 시간도 그렇지만 타인에게 받는 시선이나 사회의 보이지 않는 차별은 장애 체험으로 알기 어렵습니다. 그래서인지 자꾸 겉으로 보이는 몸의 장애만 흉내 낸 ‘가짜’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저는 이날 1시간 동안 장애 체험 코스를 돌았습니다. 여러 유형 장애를 간접적으로 경험했습니다. 지체장애를 이해하고자 휠체어를 탄 동료를 뒤에서 밀고, 내리막 길에서는 조심조심 내려왔습니다. 시각장애를 이해하려고 안대를 쓰고 벽을 짚어가며 계단을 오른 뒤 온 감각을 동원해 다리를 건넜습니다. 점자로 된 단어를 손끝으로 읽어보았습니다. 큰 소리가 나오는 스피커를 쓰고 내 앞의 사람에게 말을 전달하며 청각장애인의 상황이 되어보려 했습니다. 마지막은 거꾸로 보이는 글자와 그림을 바르게 쓰는 것으로 마무리했습니다.
마친 후에는 체험을 통해 무엇을 느꼈는지 간단한 소감을 적습니다. 뭐라고 적어야 할지 몰라 멈칫했습니다. 분명 그 짧은 순간에도 느낀 점은 있습니다. 눈을 감고 걸을 때는 불안해서 한 발짝 떼기가 두렵고, 상대의 말이 잘 들리지 않는 것도 답답한데 내 말을 알아듣지 못하는 상대를 보니 목소리만 커집니다. 휠체어 바퀴는 생각보다 무겁고 방향 조절도 어렵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얼마나 불편하고 힘들까?’, ‘ 장애가 있어도 잘 지내는 모습이 대단한 것 같아.’ 대체로 단편적인 장애 체험 후의 소감은 여기서 그치고 맙니다. 장애를 그저 측은하고 모든 순간 도움이 필요한 것으로 이해하여 동정의 대상이 될까 우려합니다. 평범한 일상을 사는 모습에 감동하고 존경하는 시선도 장애가 있으면 무능력하다고 보는 전제가 뒷받침되어 있기에 경계합니다.
사회복지 현장에서 처음 일하게 되었을 때 저도 비슷한 일을 했었습니다. 지역축제 때 장애 체험 부스를 만들어 운영해본 적이 있고 많은 주민이 참여할 수 있도록 나섰습니다. 어떻게 보면 체험하는 아이들에겐 흥미로운 놀이 같았습니다. 어설픈 모양에 웃음이라도 터지면 현장 분위기는 경직되거나 오히려 화기애애해졌습니다.
사실 그때는 잘 몰랐습니다. 내가 지금 장애 체험이라는 이름을 걸고 하는 말과 행동을 깊이 생각해보지 않았습니다. 그저 시선을 끌만 한 축제 아이템 정도로 생각했음을 부정하지 못합니다. 다시 한다면 당사자들의 생각 먼저 묻고 듣겠습니다. 해야 한다면 현장에서 당사자와 함께할 수 있는 일을 논의하겠습니다. 적어도 내 일에 명분, 근거를 보충하여 진행하겠습니다.
장애인복지 현장에서 본격적으로 일하게 되면서 예전에는 그저 그렇게 넘겼던 것들이 이제는 어쩐지 불편하게 느껴집니다. 적어도 ‘그냥 하는 것’, ‘해왔던 방식대로 하는 것’은 없다고, 비판적으로 사고하며 일하고 싶습니다.
장애 체험의 한계
최근 2-3년 사이에 MBTI가 유행하면서 소개팅에서도, 면접에서도 관련 질문을 심심치 않게 받았습니다. 16개 유형으로 사람을 나눈다는 것이 말도 안 된다고 생각했지만 재밌기도 했습니다. 처음엔 괜찮았는데 나중엔 내가 어떤 행동을 하면 “‘I’들은 원래 그래요.”라든가, “‘F’가 분명해요.”라며 유형별 특징에 저를 끼워 맞추려는 것이 유쾌하지 않았습니다. 유형만 보고 “나랑 성향이 비슷하겠네요.”, “서로 극과 극이네요.”, “‘INFP’가 아닌 것 같은데요? 그렇게 안 보여요.” 같은 이야기까지 들으면 속에서는 ‘나를 얼마나 아십니까’라고 묻고 싶은 마음이 절로 들었습니다.
유형으로 사람을 보게 되면 개인의 특성을 일반화하기 쉽습니다. 기대나 예상과 다른 모습에 사람들이 의아해합니다. 잘못한 것도 아닌데 괜히 맞춰야 할 것 같은 이상한 기분도 듭니다.
사람은 누구나 자신을 선입견 없이 온전한 나로 봐주길 바랍니다. 그래서 공식처럼 어떤 유형으로만 평가되길 바라지 않습니다. 특별히 좋고 나쁨으로 구분되지 않는 MBTI도 그러한데 장애라면요? 장애에 대한 사회 인식을 생각하면 더 조심스러운 일입니다. 당사자 한 명씩 개별화해서 보기보다 장애 유형을 먼저 보지 않았는가. 섣부른 추측과 편견 때문에 당사자에게 난처하고 죄송했던 적이 떠올라 부끄럽습니다. 당연히 안될 것이라고, 어려울 것이라고 지레짐작하여 한 번 더 시도하기 전에 포기하거나 어쩌면 개인의 특성을 증상으로 해석하여 놓친 기회가 있을지도 모릅니다.
많은 사람들이 장애 유형을 장애인을 분류하는 기준 또는 잣대로 생각한다. 그래서 같은 시각장애인이라도 전혀 다른 장애(정도)를 가지고 완전히 다른 삶을 살 거라 생각하지 않으며, 척수장애인들끼리도 서로의 상태에 대해 모르는 게 당연할 수 있다는 생각을 하지 못한다. 「장애인과 함께 사는 법」(백정연, 유유, 2023)
환경은 배제한 채 신체적 정신적 지적 기능의 손상이나 결여, 혹은 여느 누구와 다른 상태를 간접적으로 경험하는 장애 체험은 한계가 있습니다. 몸의 장애에 초점을 두어 장애가 불편하게 된 사회적 원인을 제대로 보지 못하게 하기도 합니다. 게다가 같은 장애가 있어도 정도에 따라 증상과 겪는 불편의 정도가 다릅니다. 상황 사안 사람에 따라 다릅니다. <복지요결>에서는 상황적 장애*라고 설명합니다.
*"생활의 장애는 어떤 상황에서 어떤 일이 막히는 현상입니다. 상황적 현장이지 사람의 속성이 아닙니다. 상황에 달린 문제이지 당사자에게 고정적으로 있는 문제가 아닙니다. (…) 예컨대 학습 장애를 겪는 사람을 학습 장애인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그 사람에게 학습 장애가 있다고 할 수도 없습니다. 생활의 장애는 당사자에게 귀속시킬 수 없다는 말입니다."
길을 걷는 것 하나만 보더라도 주변 소리에 의존하는 사람, 지팡이와 발의 촉감에서 정보를 얻는 사람, 뺨에 닿는 바람으로 길모퉁이나 엘리베이터 타는 곳의 위치를 파악하는 사람 등 다양하다. 우리는 무의식 중에 눈이 보이지 않는 사람은 다 똑같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사실 그들의 삶의 방식 시각의 사용 방법은 매우 다양하다. 다시 말해 눈이 보이지 않는 사람의 청각이나 촉각이 발달해있다고 그들을 특별하게 바라보는 시선은 다양성을 무시해버리기 쉽다.
‘점자=촉각’도 신빙성이 없기는 마찬가지다. (…) ‘눈이 보이지 않는 사람=점자=촉각’이라는 등식으로 상황을 이해하려고 하면, ‘눈이 보이지 않는 사람에게는 전부 만질 수 있는 것으로 정보를 주는 것이 좋다’는 융통성 없는 생각을 하기 쉽다. 「눈이 보이지 않는 사람은 세상을 어떻게 보는가」(이토 아사, 에쎄, 2016)
차이를 인정하는 것과 특별하게 바라보는 것은 다릅니다. 당사자를 잘 이해하기 위해 하는 장애 체험이 오히려 장애와 비장애, 네 것과 내 것을 구분하게 한다면 안 하느니만 못할지도 모릅니다.
특별하지 않게 일상에서 만난다면
오히려 제게 당사자를 이해하고 지원하는 데 있어 도움이 되었던 경험은 따로 있습니다. 직업재활시설에서 일할 때 사적으로 자립생활센터에서 근무하시는 분들과 종종 만났습니다. 퇴근 후 만나 차 마시고, 밥 먹고, 평범한 일상이 대화의 주제였습니다. 그런 날들을 함께하며 상대를 알아갔습니다. 같이 밥 먹을 식당을 찾으며 휠체어가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는 식당이 많지 않음을 알았습니다. 화장실은 넓은지, 좌식인지 테이블인지를 살펴보게 되었습니다.
함께 길을 걸을 때 쏟아지는 시선을 느꼈습니다. 이유 없는 타인의 시선이 이렇게 불편한 것인 줄 그제야 알았습니다. 이때만큼 장애인복지를 바르게 잘하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던 적이 없는 것 같습니다. 만나는 횟수가 늘고 관계가 쌓이면서 처음에는 절반도 알아듣지 못했던 말이 이해할 수 있는 정도로 들리기 시작했습니다. 상대가 평소 쓰는 말 습관이나 표현을 자주 듣다 보면 맥락으로 이해되는 것도 많았습니다. 평범한 관계, 인격적 관계로 만났을 때 그 사람을 더 잘 알 수 있었습니다.
어느 날은 지원하던 당사자의 집회 현장에 동행했습니다. 피켓을 들고 국회의사당 주변을 함께 걸었습니다. 집회를 주관하는 팀장님 제안으로 휠체어를 타고 보도블럭이 잘 정비된 길을 지났습니다.
국회의사당 근처, 깨끗하고 정갈하게 정돈된 길임에도 울퉁불퉁 부딪치는 충격이 그대로 몸에 전달되었습니다. 별것 아니게 보였던 문턱도 한 번에 넘지 못했습니다. 얼마 타지 않았는데도 땀이 흘렀습니다. 셔츠가 축축하게 젖고 나서야 집회에 임하는 그 마음을 조금 알 것 같았습니다.
중요한 것은 어울릴 기회
비장애인을 대상으로 장애 인식개선 즉, 프로그램을 통해 장애에 대한 태도를 긍정적으로 변화시키고자 한 연구 논문들을 살펴봤습니다. 정확히 비교할 수 없으나 논문의 상당수가 장애인과 상호작용 없이 비장애인만을 대상으로 하는 프로그램이 많았습니다. 일부 아동을 대상으로 한 연구에서는 비장애아동과 장애아동 사이의 상호작용이 없는 장애인식 개선 노력은 비장애아동의 장애 수용 태도 중 인지적, 정의적 행동 변화를 가져왔을 뿐, 실제 행동적 변화는 가져오지 못했다는 연구 결과*가 있었습니다.
* 장애이해교육프로그램이 초등학교 비장애학생의 장애수용태도, 공감, 이타행동에 미치는 효과(박아진, 단국대 석사학위논문, 2021)
다른 논문에서는 통합캠프를 통하여 장애 청소년과 직접 상호작용한 비장애 청소년들은 마친 후 장애인과의 사회적 접촉 의향 점수가 올라갔으며, 장애인의 일탈 행위에 대한 반응도 더 긍정적으로 향상되었다는 연구 결과를 밝혔습니다.* 통합캠프가 학생들에게 정서적 공감의 기회를 직접적으로 제공함으로써 장애인에 대한 수용 태도와 정서적 공감이 향상한 것입니다.
* 장애인 친구의 유・무와 통합캠프 참여에 따른 비장애 청소년의 장애수용태도 및 공감의 차이(하주현, 인문사회21, 2023)
논문이 아니라더라도 현장에서 이런 일은 자주 경험합니다. 당사자를 직접 만나고 어울림으로써 주변 사람, 지역사회 인식이 빠르게 변하기도 합니다. 미디어 속 이미지나 체험으로 수동적이고 학습하듯 장애인을 만나니 남 일처럼 멀게만 느껴집니다. 만나본 적이 없고 잘 몰라서, 나와 당사자를 위해 조심하고 경계합니다. 실제로 현장에서 일하며 당사자를 어떻게 만나야 할지 몰라서, 혹시나 무례한 행동으로 상처를 줄까봐 먼저 다가가지 못하는 주민들도 있었습니다.
MBTI 질문을 받았던 때를 떠올려보면 대체로 알게 된 지 얼마 안 된 사이거나 친밀한 관계가 아닌 경우였습니다. 오래 알고 지낸 친구나 가족은 이미 저를 충분히 이해하고 있기에 이제 와서 특별히 유형을 묻지도 않을뿐더러 추측해서 판단하지 않습니다. 장애도 그렇지 않을까요? 일상에서 당사자를 자주 만나고 관계해왔다면 당신이 무슨 장애가 있고, 어떤 어려움을 겪는지 굳이 물을 일이 없을 겁니다.
오히려 함께 어울리며 장애 때문에 겪는 불편과 어려움을 옆에서 보고 이 사회의 소수자로 살아간다는 것의 의미를 아는 것이 더 중요할지 모릅니다. 필요한 것은 자연스럽게 어울릴 기회입니다.
장애인복지법에서는 장애를 15가지로 유형화합니다. 정책, 행정적 필요에 따른 용어이지 한 사람을 포괄하는 단어는 아닙니다. 장애 체험으로 정말 이해하고 싶은 것은 몸의 기능이 아니라 사람입니다. 그 사람의 일상이고 삶입니다.
사회적으로 권리가 침해된 존재들의 삶을 교재로 삼아야 하는지 이해가 가질 않습니다. '빈민체험', '노동체험'은 봤지만, 사회적으로 권리를 충분히 누리고 있는 존재들을 체험해보는 것은 단 한 번도 본 적이 없습니다. 이를테면 '재벌체험' 같은 것 말입니다. 섣부른 체험은 "나는 저렇게 되지 말아야지"라는 공포감을 조성하거나, 타인의 불행을 행복의 기준점으로 삼게 할 수 있습니다.
저도 36년을 장애인으로 살아왔습니다. 단 하루 '장애체험'을 통해 36년간의 차별과 불편을 이해하겠다고 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그 누구에게도 나를 체험할 권리는 없습니다. 남의 고통과 자신의 처지를 비교하는 것은 분명 누군가에게 폭력이 될 수 있습니다. - 오마이뉴스‘그 누구도 나를 체험할 권리는 없다.’(18.4.24)
후배가 같은 질문을 한다면
당사자를 더 잘 이해하고 싶은 그 마음을 응원합니다. 후배가 그런 마음을 갖고 있다면 선배로서 어떻게든 돕고 싶습니다.
“어떻게 하면 당사자를 이해할 수 있을까요?” 이렇게 질문한다면 3가지로 대답하겠습니다.
첫째, 공부합니다.
장애인복지 현장에서 일하겠다고 마음 먹었을 때 ‘장애’와 관련한 인문 서적, 사례집, 논문 등을 찾아 읽었습니다. 인문 서적은 장애에 대해 철학적으로 생각해볼 수 있어 좋았고, 사례집은 현장에서 바로 응용할 수 있어 좋았습니다. 논문은 실천 방향을 점검하는 데 용이했습니다. 책을 통한 간접적인 경험이 장애에 대한 선입견을 해소하고 장벽을 낮춰주었습니다. 장애인복지기관에서 일하는 사회복지사는 사회복지학 가운데서도 장애인복지학에 근거하여 일하는 사람입니다. 학문에 근거한 일인데 학습 없이 일한다면 모순입니다. 학습은 건강한 뿌리를 만드는 일입니다. 뿌리가 건강한 나무는 가지가 무성합니다. 학습 아래 방법이라는 가지가 무성해집니다. 장애에 대한 사회 인식도 당사자의 삶도 끊임없이 변하는데 꾸준히 학습하지 않는 사회복지사는 결국 ‘고인물’이 되고 맙니다.
둘째, 자주 만납니다.
일상에서 어렵다면 현장에서 자주 만납니다. 경험이 많지 않을 때는 선배가 당사자를 만나러 갈 때 동행하는 것이 좋은 방법입니다. 함께 이동하는 차 안에서 당사자를 지원하는데 필요한 정보를 묻거나 들을 수 있습니다. 선배가 당사자와 만나는 모습을 보며 만남의 자세를 배웁니다. 사람, 상황에 따라서는 만남 전에 다른 도구나 준비가 필요할 수 있습니다. 이때도 무엇을 어떻게 준비하면 될지 잘 보고 적용해봅니다.
어떤 말과 행동으로 당사자를 대하는가? 사람을 만나는데 딱히 정해진 순서나 방법이 없기에 마음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오히려 기술만 가지고 만나려고 한다면 관계는 더 어려워질지도 모릅니다. 마음에서 나오는 태도는 말로 설명하기 어렵습니다. 백 번 듣기보다 한 번 보고, 직접 만나고 또 보는 것이 낫습니다. 百聞不如一見(백문불여일견)입니다.
셋째, 다양한 활동으로 만납니다.
사람은 한 가지 면만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언제 어디서 누구와 무엇을 어떻게 왜’ 무수한 조건에 따라 다양한 모습을 드러내는 것이 사람입니다. 매일 술 드시던 아저씨, 지역사회에서 자기 역할이 생기자 책임감으로 매일 마시던 술을 참았습니다. 이런 사례를 많이 보았습니다. 대체로 다양한 활동으로 평소 보지 못했던 새로운 모습과 강점을 발견합니다. 오히려 장애가 아닌 그 사람 자체를 보게 만들기도 합니다. 당사자를 이해하는 폭이 넓고 깊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