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이레놀 두 알의 효과 : 몸과 마음의 고통
조은정
부작용 없이 마음을 치유해주고 안정된 상태를 만들어 주는 약이 있다면 먹겠는가?
솔깃하다. 외로움, 슬픔, 고독, 알 수 없는 불편한 감정을 없애주고 마음의 평화를 몇 알의 약으로 얻을 수 있다니, 늘 마음이 번잡한 나는 구미가 당긴다. 소설 「멋진 신세계」(올더스 헉슬리, 소담출판사, 2015)에는 불편한 감정을 지우고 행복에 빠져드는 약 ‘소마’가 존재한다. 금요일이 되면 모든 근로자에게 소마가 배급되고 멋진 신세계 사람들은 토요일에 소마를 반 그램 먹어, 삶에 제 멋대로 찾아드는 불편한 감정을 초장에 차단한다. 소마 1그램을 먹으면 동아시아를 여행하는 기분에 빠져들 수 있고, 2그램 정도면 우주여행을 하는 듯한 휴식에 빠져들 수 있다. 소마는 부작용이 없을뿐더러 중독성도 없다. 단지, 원초적 쾌락 외의 감정을 느낄 수 없으며, 사유할 수 없도록 만든다. 이 세계 사람들은 수정체시기부터 직업능력 필요에 따라 유전자 변형이 된다. 태어난 이후로 끊임없이 학습과 경험으로 세뇌하고 조작한다. 소마는 사람들이 그 범주에서 벗어나지 못하도록 붙잡는다. 사람들은 순종과 복종, 길들어진 상태에서 편안함을 느낀다. 이 안정된 상태에서 벗어나는 사고가 일어날 조짐이 보이거나, 사고하지 않아 원인조차 모르는 불편한 감정과 불안이 찾아오면 재빠르게 소마를 먹는다. 이곳은 노화가 없고, 질병이 없으며, 죽음에 대한 두려움도 없다.
종종 소마를 떠올린다. 크고 작은 소용돌이에 휘말릴 때, 생각이 뒤엉켜 내 생각인지 누구 생각인지 모를 때, 울적한 기분에 휩싸일 때, 잠 못드는 밤… 이 잡념과 번민에서 해방되는 약이 주어진다면 먹지 않을 수 있을까.
어르신 댁에 방문하여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몸이 아픈 이야기가 빠지지 않는다. 잠자리 머리맡, 텔레비전 옆, 식탁 위. 눈에 잘 띄고 손이 잘 닿는 곳에 자리한 약 봉투는 한 꾸러미다. 관절염약 하루에 한 번, 고혈압약은 아침에 한 번, 골다공증약, 허리디스크약, 고지혈증약, 방광염약, 위염약, 치매예방약, 우울증약 … 듣다보면 정신이 아찔해진다. 어르신 말대로 종일 약을 챙겨 먹다보면 하루가 저문다. 약이 없으면 아파서 살 수 없는데 아무리 약을 먹어도 좀처럼 나아지지 않고 악화일로다. 병원에 갈수록 병명은 많아지고 약도 늘어난다. 이런 신체 고통은 마음 고통으로 이어진다. 몸이 아프니 만사가 귀찮고 움직이기 힘들다. 사실 몸이 먼저 아팠는지, 마음이 먼저 아팠는지 알 수 없다. 마음이 아프니 몸이 병든 경우도 많다. 움직이기 힘드니 혼자 있는 시간이 늘어나고 울적한 마음은 더 커진다. 울적한 마음이 커져 병원에 찾으니 마음을 치유하는 약을 준다. 아직까지 우리 사회에 마음을 치유하는 약은 「멋진 신세계」 소마처럼 부작용이 없지 않고, 모든 걱정과 불안을 차단시키지 못한다. 그래서 마음을 치유하는 약을 먹어도 여전히 아프고 서글프다. 약이 없으면 불안하니 더욱 약에 의존하게 된다.
몇 해 전 어르신들과 가을 나들이를 갔다. 오랜만에 나선 나들이에 어르신들은 꽃처럼 곱게 차려입으셨다. 나는 거동에 어려움이 있는 어르신들과 한 조를 이루었다. 자신의 느린 속도와 거동 불편이 남에게 피해를 줄까봐 나들이를 마다하던 어르신 몇 분을 겨우 설득해 꾸린 조다. 각자 속도로, 걷고 싶은 정도만, 가고 싶은 대로 걷기로 하였다. 그 가운데 백세를 앞둔 어르신이 우려를 깨고 가장 씩씩하게 걸으셨다. 작은 몸집에 등이 많이 굽은 어르신이 지팡이도 짚지 않고 걷고 계셨다. 나이 들면 아픈 게 당연하다고, 나이 든다는 것은 아픔에 익숙해지는 거라고 이 정도 아픔은 견뎌야 앞으로도 살 수 있다며 걱정하는 나를 안심시키셨다. 어르신 말씀에 가슴이 먹먹해졌다. 고통에 익숙해진다는 것은 무엇일까. 살기 위해 고통에 익숙해져야 한다. 고통을 견뎌내야 한다.
「사회적 뇌」(매튜 D 리버먼, 시공사, 2015)에 담긴 실험연구가 눈길을 끈다. ‘타이레놀’ 두 알이 신체적 고통뿐만 아니라 정서적 고통 즉, 마음의 고통에 효과가 있다는 주장이다. 타이레놀은 신체적 고통을 잊기 위해 흔히 복용하는 약이다. 감기로 인한 몸살과 고열, 두통, 신경통, 생리통 등 신체적 고통과 밀접한 약이 마음의 고통까지 치료하는 효과를 보인다고 한다. 타이레놀을 복용한 집단과 타이레놀 효과가 없는 가짜 약을 먹은 집단은 매일 밤 그날 겪은 사회적 고통을 어느 정도 느꼈는지 이메일로 답하게 한 실험이다. 실험결과 타이레놀을 복용한 집단이 사회적 고통을 덜 느꼈다. 이후, 사이버볼 게임을 하면서 뇌 영상촬영 실험을 진행하였는데, 이 실험은 게임에서 소외를 경험하도록 설계하였다. 여기서도 타이레놀 복용집단의 뇌는 소외로 인한 사회적 고통을 덜 느꼈다.
여기서 우리의 뇌는 신체적 고통과 사회적 고통을 비슷하게 받아들이고 처리한다는 것을 발견하였다. 아픈 몸과 아픈 마음을 동일하게 처리하는 뇌는 몸과 마음이 병드는 순서가 중요하지 않다. 몸이 아프니 마음이 아프고, 마음이 병드니 몸이 병든다는 말이 틀리지 않다.
당사자와 이야기를 나누다보면 당사자가 아프기 시작한 시기는 ‘그 때 그일’이 일어났을 즈음이다. 그 때 그 나쁜 일은 어느 날 갑자기 몰려서 찾아오는 것일까. 여러 일로 집안사정이 기울기 시작한 때, 별 수 없이 이혼을 받아들여야 했을 때, 부모 자식하고 헤어져 홀로 사는 삶을 선택해야만 했을 때, 그 때부터 당사자에게 고통이 찾아온다.
몸이 아픈 당사자를 사회복지사인 우리가 어떻게 도울 수 있을까. 의사가 아닌 우리는 당사자의 신체적 고통을 낫게 할 수 없다. 우리는 타이레놀 한 알도 처방할 수 없다. 그저 우리는 당사자의 사회적 고통 즉 마음의 상처를 치유하는 일에 집중할 뿐이다.
「사회적 뇌」에서는 여러 경제학자의 돈과 행복에 관한 연구를 소개하였는데 결혼은 10만 달러의 추가 소득 가치를 지니며, 이혼은 연봉이 9만 달러 줄어드는 효과를 낳는다고 하였다. 거의 매일 만나는 가까운 친구가 있으면 이런 친구가 없는 사람보다 연 소득 10만 달러를 더 버는 효과가 있고, 이웃을 규칙적으로 보기만 해도 연봉이 6만 달러 증가하는 효과가 있다고 하였다.
우리는 당사자가 겪는 경제적 어려움에서 벗어나도록 풍부한 자원을 가져다 줄 수 없다. 우리가 당사자의 삶을 사회적으로 가꾸는 일이 당사자에게 현금 꾸러미를 안기는 일은 아니다. 당사자가 이웃과 차를 마시고, 대화를 나누고 지역사회에 한 구성원으로 어우러져 살아가게 돕는 일는 일이다. 사회복지사인 내가 당사자에게 처방할 수 있는 ‘소마’와 ‘타이레놀’은 ‘타자와 어울리는 재미와 감동’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