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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사업가의 책 읽기/사회사업가의 고전읽기

[고진실] 의식을 깨우는 말하기와 글쓰기 : 조지 오웰 「1984」

by 구슬꿰는실 2024. 7. 25.

 

 


의식을 깨우는 말하기와 글쓰기 : 조지 오웰 「1984」

 

 

 

고진실

 

 

 

 

조지 오웰 대표작으로 꼽히는 「1984」는 생애 마지막 작품입니다. 앞서 동물농장에서 권력이 부패 되는 과정을 보여줬다면 「1984」는 거대 권력이 장악하는 사회 모습을 적나라하게 표현합니다. 전체주의 사회에서 개인은 국가 체제를 유지하기 위해 존재할 뿐이기에 개성은 필요하지 않습니다. 억압과 통제로 사람들은 어느새 사람다움을 상실합니다. 고전은 시대를 관통해 전달하는 메시지가 있습니다. 저는 사회사업가 시선에서 책을 읽었습니다. 사회사업적 의미를 찾고자 했습니다.

 

 

 

사회사업 현장과 ‘빅브라더’

 

‘빅브라더’는 실체를 알 수 없는 거대 권력의 핵심입니다. 사람들은 빅브라더의 일방적 통치 아래 삽니다. 폐쇄적인 사회에 고립된 삶은 의식할 새도 없이 사람들 생각과 사고를 지배하고 말과 행동을 만듭니다. 나아가 그렇게 적응한 사람들 태도는 빅브라더의 어긋난 체제를 견고하게 합니다. 어디가 시작이고 무엇이 원인인지, 따지기 어려운 상황이 우습지만 괴롭습니다. 남 일 아닌 내 일 같아 씁쓸했습니다.

 

빅브라더가 사람을 어리석고 무기력하게 합니다. 이치에 맞지 않음을 알면서도 두 눈을 가리고 귀를 막습니다. 정작 목소리를 내야할 때는 입을 다물고 맙니다. 사회사업 현장에서도 비슷한 일이 벌어집니다. 긴 시간 천천히 고착된 체제와 구조, 문화와 습관이 그렇습니다. 당장 사회사업 현장과 우리 실천은 당당하고 떳떳한가요? 감추고 싶은 일, 바꿔야 할 것들이 있습니다. 보이지 않는 빅브라더가 존재합니다. 하지만 현장이 익숙해질수록 양심 두께는 얇아지는 것인지, 후배 세대를 마주할 자신이 없습니다.

 

윈스턴은 체제에 순응하며 당 필요에 따라 역사를 날조하는 일을 합니다. 그는 자기 일이 거짓임을 알지만 죄책감을 느끼거나 문제라고 여기지 않습니다. 의식 없이 일했습니다. 많은 사람이 긴 세월 거짓 정보에 선동되었으니 치러야 하는 대가가 컸습니다. 뭐가 진실이고 거짓인지 알 수 없는 지경이 되자 사람들도 더이상 진실을 궁금해하지 않습니다. 문제라고 생각했던 것들이 일상이 되면 적응하고 무뎌집니다. 불편할 것도 이상할 것도 없으니 동화되어 삽니다. 나중엔 문제를 제기하는 것은 둘째 치고 상황을 제대로 인식하기도 어렵습니다.

 

사회사업가가 의식 없이 일했을 때 치러야 하는 대가는 무엇일지 상상합니다. 무엇이든 온전히 우리가 만나는 당사자, 약자가 감당할 것을 생각하면 이상 원칙 없이 그저 해왔던 대로, 시키는 대로만 할 수 없습니다.

 

빅브라더로 상징되는 권력, 체제를 비판하지만 따지고 보면 빅브라더의 몸집을 키운 것은 윈스턴 같은 평범한 사람들입니다. 곪아버린 문제를 어디서부터 풀어야 할지 실마리가 보이지 않을 때 차라리 그냥 모른척하면 속은 편할지 모릅니다. 하지만 변화는 기대할 수 없습니다. 상황만 악화할 뿐입니다.

 

 

 

노트가 의식을 만든다

 

윈스턴은 우연히 들른 골동품 상점에서 낡은 노트를 삽니다. 그리고 본인이 보고 겪은 것, 평소 의문 생각을 노트에 적습니다. 이곳에서 글을 쓰는 행위는 엄격하게 금지되어 있습니다. 들켜서는 안 되는 글, 처벌받는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는 글쓰기를 포기하지 않습니다. 윈스턴은 어떤 마음으로 글을 쓰는 것일까? 그의 글은 처음에 별 의도 없이 시작했을지 모릅니다. 그러나 곧 기록으로 분명히 인식합니다. 일상에 깊숙하게 스며든 거짓 뉴스, 가짜 역사, 왜곡된 기억을 발견합니다. 기록할수록 문제의식은 단단해집니다. 저항하고 싶은 마음이 순간순간 끓어올랐고 가슴은 뜨거워집니다. 윈스턴에게 기록은 의식을 깨우는 일의 시작이었습니다. 그동안 알면서도 모른 척했던 불편한 현실을 마주하는 거울이었습니다. 더는 모든 것을 당연하게 여겼던 자기 무지를 외면하기 어렵습니다.

 

처음 현장에 들어올 때 사회사업가라면 모름지기 이래야 한다는 이상적인 모습을 그렸습니다. 도덕적 가치를 지키며 당사자 편에 서서 적극 옹호하는 정의로운 모습을 생각했습니다. 언제라도 당사자 처지와 상황에 진심으로 공감하겠다는 굳은 다짐도 기억합니다. 지금도 예전 같은 뜨거움으로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는지, 가끔은 익숙한 일인 듯 무심하게 넘깁니다. 이 정도는 매뉴얼로 해결할 수 있다며 섣부르게 잣대를 댑니다. 중간에 발자취를 더듬어 봐야 합니다. 어디서 출발했고 목적지가 어디였는지, 방향이 맞는지 살피지 않으면 지금 서 있는 곳이 어딘지 알 수 없어 불안합니다. 윈스턴은 기록으로 삶의 좌표를 찾았습니다. 사회사업가 기록도 사회사업 좌표를 확인하는 일입니다.

 

모든 일에는 결과와 과정이 있습니다. 어떤 일은 과정보다 결과가 중요해서 성장률, 수익률 같이 숫자로 설명합니다. 무엇이 가장 좋은 결과인지 판별하기 쉽습니다. 높고 낮은 것, 좋고 나쁜 것, 성공한 것과 실패한 것이 구분됩니다. 반면 어떤 일은 결과만큼 과정이 중요합니다. 과정이 나쁘다면 결과가 좋더라도 퇴색합니다. 과정은 진행 중인 것이니 매 순간 소홀할 수 없습니다. 때마다 바른 선택과 결정을 해야 하고 일관된 방향성이 중요합니다. 잘못하더라도 바로잡으며 나아가야 결과에 의미가 있습니다. 결과만으로 뭐가 최고인지 따지기 어려운 일입니다. 사회사업이 이런 일에 가깝다고 생각합니다.

 

사람을 대하고 약자를 거드는 일입니다. 사람을 사물처럼 만나면 빅브라더와 다를 것이 있나요? 그저 좋은 결과물을 만들어 내기 위한 존재로 보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당사자 삶을 존중하는 진짜 사회사업가라면 과정을 중요하게 여길 테고, 그럼 과정을 점검하려고 할 겁니다. 절대 성찰 없이 일하지 않을 것 같습니다.

 

실수하지 않을 자신 있나요? 당사자를 더 잘 지원하기 위해서 실천을 돌아보는 일이 기록입니다. 지난 일을 곱씹으며 부끄러운 점을 찾고 다시 한다면 어떻게 하겠다는 각오를 밝힙니다. 윈스턴처럼 기록으로써 세상을 바꿀 것을 기대하지 않지만 성찰하며 일하는 사회사업가가 많아진다면 사회사업 현장은 바꿀 수 있을지 모릅니다.

 

요즘 현장 사회사업가들이 쓴 실천 사례를 읽고 있습니다. 내가 알지 못하는 당사자의 다양한 삶을 이해하기 위해, 현장 동료들이 당사자를 어떻게 도우려 애썼는지 배우고 싶습니다. 읽기로 한순간에 내 실천이 바뀌지는 않아도 마음가짐은 변합니다. 사회사업가 정성과 진심이 느껴져 동료로서 함께하고 싶은 마음이 듭니다, 이렇게 기록은 쓰는 사람, 읽는 사람 모두에게 영향을 미칩니다. 글에는 분명 힘이 있습니다.


윈스턴은 기록이 죄가 되는 때에 자기 삶을 맞바꿀 각오로 글을 썼습니다. 기록이 삶의 의지로 보였습니다. 일기를 쓰는 동안에 그는 자기 뜻대로 가장 용감하게 살았습니다. 이전과 다르게 체제에 반하는 행동인 걸 알면서도 나섭니다. 글이 용기가 되고 희망을 만들기에 절실했습니다.

 

바쁘고 여유가 없다는 이유로 글쓰기를 미루지만, 당장 더 나은 실천에 갈급하다면 소홀하게 하지 않을 겁니다.

 

 

 

말은 의식을 담는 그릇이다

 

“자네는 신어를 만든 목적이 사고의 폭을 좁히는 데 있다는 걸 모르나? 결국 우리는 사상죄를 범하는 것도 철저히 불가능하게 만드는 걸세. 그건 사상에 관련된 말 자체를 없애버리면 되니까 간단하네. (…) 세월이 흐를수록 낱말 수는 줄어들고 그에 따라 의식의 폭도 좁아지게 되는 거지.”

신어의 창안 목적은 영사의 신봉자들에게 걸맞은 세계관과 사고 습성에 대한 표현 수단을 제공함과 동시에 영사 이외의 다른 사상을 갖지 못하도록 하는 데 있다. (…) 신어는 사고의 영역을 넓히기 위해서가 아니라 ‘줄이기’ 위해서 창안된 것인 만큼 이것은 신어의 창안 목적을 간접적으로 달성시키는 역할을 했다.

 

당은 이념적 필요로 ‘신어’를 만듭니다. 계획적으로 구어를 축소하고 신어 사용을 확대합니다. 쓸모없는 단어라고 생각하면 임의로 삭제했고 단어가 가지는 여러 의미도 하나로 통일합니다. 말이 단순하고 쉬워졌으니 좋은 일일까요? 언어는 문화를 반영하고 문화 그 자체이기도 합니다. 문화로 총칭하는 모든 것이 단순하고 협소해진 사회에서 다양한 사람이 존중받기는 어렵습니다. 약자, 소수자는 자기 삶을 설명할 수 있는 언어가 없으니 빠르게 잊힙니다.

 

의도한 대로 당원들은 점차 말을 잊으며 생각도 좁아집니다. 앞으로 사람들은 자유를 말하고 싶어도 말할 수 없고, 사랑한다는 말도 변질될지 모릅니다. 말이 사라지는 것뿐인데 반역도 저항도 자유도 희망도 꿈꿀 수 없습니다. 말이 곧 사고와 의식을 만듭니다. 말에는 쓰는 사람 사고와 의식이 담겨있습니다.

 

현장에서 쓰는 말들이 사회사업가 의식을 보여줍니다. 사회사업 현장 민낯을 설명합니다. 말의 무게가 무겁습니다. 당사자에게 직접 전달되는 말이니 더욱 신중하게 써야 합니다. 약자라는 이유로 경험하게 되는 여러 어려움을 모두 헤아리지 못합니다. 그래서 이미 상처받았을 마음에 상처를 더하는 일이 없도록 말을 골라 쓰려고 노력합니다. 대화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각종 일지로 기록까지 남습니다.

 

문제 풀 듯 양식 빈칸을 채우고 사건기록인지 관찰일지인지 모를 상담일지를 썼습니다. 기타 행정 문서에 당사자를 어떻게 설명하고자 했는가 돌이켜 생각해봤습니다. 일부만 보고 전부 안다는 듯 말하고, ‘~장애’ ‘장애인’ ‘장애 경중’을 무심하게 적었습니다. 당사자의 어려운 행동을 공격적이라고 표현했습니다. 당사자 어머니가 참았던 서운함을 말해주셨을 때야 잘못된 표현을 알고 사과했습니다. 당시에는 분명 상황을 고려하여 골라 쓴 말인데도 지금 보니 당사자 상황은 배제한 표현이었습니다. 듣는 사람 처지를 살피지 못했습니다.

 

말은 의식을 담는 그릇입니다. 의식이 커지면 평소에 쓰던 언어도 다르게 보입니다. 다시 적당한 말을 찾고, 그렇게 의식도 함께 자랍니다. 사회사업 현장에서 인지 약자를 많이 만납니다. 그때마다 사람과 상황에 따라 말을 가려서 써야 했습니다. 의식적인 말 사용은 사회사업가에게 기본 덕목입니다. 그동안 소홀했던 자신을 돌아봅니다.

 

「1984」를 읽으며 유독 말과 글에 관한 것이 와닿았습니다. 윈스턴 삶이 기록 전후로 극명하게 변하기 때문입니다. 그는 기록하면서 의식을 깨웠습니다. 문제를 인식하니 변화를 꿈꿉니다. 삶에 희망과 기대가 생깁니다. 진실하고 자유롭게 사람다운 삶을 살았습니다. 기록하지 않았다면 빅브라더를 인정하고 안전하게 별 탈 없이 살았을 겁니다. 하지만 그렇게 살고 싶지 않습니다. 의식적인 삶이 더 아름답습니다.

 

가장 강력한 지배는 사람들에게 여행과 독서를 금지하는 것입니다. 인간은 누구나 독서 이전의 상태로는 돌아갈 수 없기 때문입니다. 글쓰기도 마찬가지입니다. 보이지 않을 뿐 갑과 을, 강자와 약자를 더 구분하는 시대입니다. 약자의 목소리는 쉽게 소외되는 현실입니다. 이럴 때일수록 사회사업가는 깨어있는 의식으로 일해야 합니다. 저라면 말을 다듬고 글을 쓰겠습니다. 말과 글로써 의식을 깨우고 당사자를 만나겠습니다. 자기 언어가 없으면 삶의 지분도 줄어듭니다. 사회사업가 언어가 당사자의 삶을 옹호합니다. 지금이야말로 글쓰기 좋은 때입니다. 읽고 쓰며 나를 돌아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