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례관리 사회사업 2.1]
욕구
‘욕구’는 얻거나 바라는 것입니다.
당사자가 어떤 일의 결과로써 무엇을 얻거나, 어떤 일을 하고자 바라는 것입니다. 당사자는 사회사업가에게 무언가를 부탁할 수 있고, 사회사업가도 당사자에게 그리할 수 있습니다.
사례관리 업무 과정 속 ‘욕구 사정査定’은 당사자의 욕구를 살피고 사회사업가의 욕구도 제안하는 일입니다. 어떤 욕구를 도울지 합의하려면 먼저 당사자와 사회사업가 서로 생각을 들어보고 이해합니다.
이때, 당사자가 ‘표현하는 욕구’를 그대로 ‘합의한 욕구’로 옮겨 적으면 안 됩니다. 당사자의 표현 뒤에는 다른 욕구가 있을 수 있습니다. 무엇을 느끼고 생각하였기에 그리 말하였는지, 그 ‘느끼는 욕구’도 살핍니다.
이렇게 당사자가 ‘느끼고 표현하는’ 욕구를 존중합니다. 하지만 사회사업가의 판단기준*과 사회규범**도 있습니다. 사회사업가로서 당사자의 인격과 관계를 생각하여 돕고자 하는 의도가 있습니다. 당사자 욕구에 관한 사회 문화나 관습 따위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사회사업가로서 자기 정체성에 근거한 판단입니다. 사회사업가다움과 복지관다움을 바르게 세워야 당사자의 욕구를 어떻게 도울지 그 기준을 정할 수 있습니다. 사회사업가는 당사자의 생태와 강점을 생각하고, 관계로써 도우려 합니다. 문제를 없애려 하기보다 좋은 것을 살리고 생동하게 돕습니다. (뒤 보태는 이야기에 ‘소극적 욕구와 적극적 욕구’ 참고) 긍정을 강화하여 문제를 희석하는 방식으로 돕습니다. 나아가 둘레 사람과 더불어 살게 합니다.
**뒤 보태는 이야기 ‘규범적 욕구’에서 자세히 설명했습니다.
‘당사자가 느끼고 표현하는 욕구’와 ‘사회사업가 기준과 사회 규범’, 이 둘 사이 욕구가 같다면 당사자를 응원합니다. 잘 이뤄가길 지지하고 격려합니다. 이제 욕구를 이루기 위한 적절한 자원을 찾는 단계로 넘어갑니다.
반면, 당사자와 사회사업가의 욕구가 다를 때는 합의합니다. 사회사업가는 당사자를 위해 마땅하다고 생각하는 바가 있을지라도 이를 다시 당사자에게 설명하여 ‘당사자가 느끼고 표현하게’ 거듭니다.
이렇게 합의할 때 사회사업가로서 정체성, 처지와 역량, 기회비용과 자원을 생각합니다. 이를 생각하지 않고 당사자가 표현하지 않은 욕구마저 해결해야 할 문제로 삼아 돕겠다고 나서면, 얼마 지나지 않아 감당하기 어려워 흐지부지되기 쉽습니다. 더 심각한 건 여러 영역에 걸쳐 이뤄지는 사회사업가 쪽 한계를 생각하지 않는 기계적인 욕구 파악과 사회사업가의 일방적 사정査定이 당사자를 온갖 문제가 있는 ‘종합대상자’로 취급할 위험이 큽니다.
끝으로, 욕구 합의에는 당사자와 관계도 헤아립니다. 때의 핵심은 관계. 관계가 무르익지 않으면 욕구 합의가 순탄치 않습니다. 욕구 합의는 당사자에게 우리의 뜻을 전하고 의논하고 부탁하여 이뤄간다는 말입니다. 이는 당사자와 신뢰가 바탕이 되어야 가능한 일입니다. 우리 제안이 정말 당사자에게 유익일지라도 서로 믿음이 없다면 이루기 쉽지 않습니다. 사례관리 ‘지속성’을 생각합니다. 상당 기간 꾸준히 만나며 신뢰를 쌓아야 하는 일이 사례관리입니다.
때로는 ‘진정성’이 신뢰를 쌓는 데 필요한 시간을 초월하기도 합니다. 처음 만났어도 당사자를 인격적으로 대하고, 예와 성의로, 진실한 마음으로 만나면 큰 수고 없이도 우리를 믿고 따라주기도 합니다.
당사자와 신뢰를 쌓기 좋은 도구 가운데 하나가 기록입니다. 당사자를 잘 돕고 싶은 마음을 정리한 사회사업 기록을 당사자와 공유한다면 이것이 이해와 신뢰의 발판이 될지 모릅니다.
당사자의 뜻대로만 이루거나, 사회사업가의 기준만 좇는 것은 둘 다 극단적입니다. 사회사업가 쪽의 욕구만을 생각하는 상황이 펼쳐지는 모습이 종종 ‘통합사례회의’ 같은 자리에서 보입니다. 당사자 없이 전문가란 이들만 모여 회의하여 결정한다는데, 이런 방식은 매우 위험합니다.*
*어느 지역 사례관리 보고서를 읽어보니 당사자가 자기 욕구를 직접 이야기한 경우는 전체 열네 가정 중 단 두 가정에 불과하다고 조사했습니다.
“사례관리의 초기 단계인 인테이크와 초기 정보 수집 과정에서 명확하게 대상자 자신이 자신의 욕구를 직접 제시한 것으로 분석할 수 있는 사례는 전체 14사례 중 2사례에 불과…”
「사례관리 특화사업 성과평가 연구」 (인천사회복지관협회, 139쪽)
당사자야말로 당신 삶의 전문가입니다. 당사자는 자기 일, 즉 자기 사례를 스스로 관리하는 사람입니다. 당사자가 사례관리자입니다. 부족하고 힘들어졌다고 사회사업가에게 맡기는 삶이 두렵습니다. 사회사업가는 이런저런 문제가 많아도 끝까지 당사자가 당신 삶을 선택하고 조정하고 통제하게 거드는 사람입니다. 사례관리 업무 ‘지원자’입니다.
※ ‘욕구’ 네 가지 핵심 주제
① 욕구 사정 : 당사자의 ‘표현하는 욕구’를 잘 듣고 ‘느끼는 욕구’도 묻습니다. 두 욕구를 경청하고 정리합니다.
② 욕구 합의 : 이렇게 욕구를 정리한 뒤 사회사업가 또한 자기 정체성에 근거한 판단기준과 그가 속한 사회규범을 생각하여 당사자에게 욕구를 제시하고 합의합니다.
③ 적극적 욕구 제시 : 이때 사회사업가가 제시하는 욕구는 되도록 좋은 것을 이루고 누리는 적극적 욕구입니다. 문제보다 강점에 주목한 욕구입니다.
④ 정체성과 한계를 생각하여 : 욕구를 합의할 때는 사회사업가의 정체성, 처지와 역량, 기회비용과 자원을 생각합니다.
[보태는 이야기]
소극적 욕구와 적극적 욕구
소극적 욕구는 좋지 않은 것을 해소하려는 욕구, 회피하고 싶은 욕구입니다. 적극적 욕구는 좋은 것을 바라거나 이루고 누리려는 욕구, 성취하고 싶은 욕구입니다.
사회사업가는 당사자가 좋은 것을 이루고 누리는 데 관심이 있습니다. 그런 적극적 욕구를 살리게 돕습니다. 적극적 욕구를 잘 이루고 누리면 대체로 소극적 욕구도 쉽게 풀리거나 풀 수 있는 실마리가 보입니다.
지붕에서 비가 새는 문제를 ‘소극적’으로 해결하면 비가 떨어지는 곳에 양동이를 둡니다. 이를 ‘적극적’으로 해결하면 지붕을 고칩니다. 적극적으로 해결하면 이번 비만 막는 게 아닙니다. 다음에 비가 또 와도 걱정 없습니다. 지붕을 고치면서 벌레도 잡고, 실내 장식도 새로 합니다. 소극적으로 양동이만 가져다 놓으면 그때는 넘어갈 수 있지만, 다음에 또 비가 오면 다시 양동이를 찾아야 합니다. 점점 더 큰 양동이가 필요합니다.
또한, 적극적 욕구를 이루게 도우면 당사자를 매력적으로 보이게 합니다. 이런저런 문제가 있어도 좋은 것을 바라거나 이루고 누리게 돕습니다. 그 가운데 여느 사람처럼 살아가는 모습이 드러나고 강화되기도 합니다.
복지관 사회사업가라면 나아가 이 과정으로 둘레 사람과 어울리게 합니다. 적극적 욕구를 이룸으로 자존도 높아지지만, 둘레 사람과 관계도 깊어집니다.
문제 해결 같은 소극적 욕구를 무시할 수는 없습니다. 대체로 문제를 건드리면 오히려 그 문제가 굳어지거나 덧나기도 하여 신중합니다. 복지관 사회사업가의 정체성, 처지와 역량, 기회비용과 자원을 생각하면 소극적 욕구를 다루는 일은 만만치 않습니다.
복지관 사회사업가에게 그 문제를 이겨낼 역량이 있거나 그 문제를 다룬 경험이 있어 해 볼 만하다고 여기면 그때는 소극적 욕구를 다루기도 합니다.
복지관 현장 상황을 생각했을 때, 문제와 직접 겨루기보다 좋은 것을 이루고 누리는 데 주력하는 편이 당사자와 사회사업가 양쪽 모두에게 좋습니다. 이루는 과정이 편안합니다.
[보태는 이야기]
매슬로우 다섯 욕구
아브라함 매슬로우Abraham Maslow는 임상심리학자로 연구와 실천 경험을 바탕으로 ‘욕구 5단계 이론*’을 발표했습니다. 인간은 항상 무언가를 갈망하는 존재로, 이 욕구의 충족을 위해 살아갑니다. 생리 욕구, 안전 욕구, 애정 욕구, 자존 욕구, 자아실현 욕구, 다섯 욕구**가 그것입니다. 다섯 욕구는 맨 아래 생리욕구에서 시작해 위쪽 자아실현 욕구까지 위계를 형성하며, 아래 욕구가 채워져야 그 다음 욕구가 생겨납니다. 한 욕구가 채워지면 이는 더는 ‘인간의 행동을 이끄는 동기’로써 작용하지 못합니다. 아직 채우지 못한 다음 욕구를 향하여 움직이기 시작합니다. 다음 욕구를 향한 움직임, 이것이 인간 행동의 동기가 됩니다.
*2018년 우리나라에서 출판한 「매슬로의 동기이론 : 욕구 5단계 이론의 오리지널 완역판」을 참고하여 매슬로우의 욕구 이론을 ‘욕구 5단계’로 정의합니다.
** 「매슬로의 동기이론 : 욕구 5단계 이론의 오리지널 완역판」에서는 이 다섯 욕구를 ‘생리적 욕구 (The Physiological Needs), 안전 욕구 (The Safety Needs), 사랑의 욕구 (The Love Needs), 자기 존중의 욕구 (The Esteem Needs), 자아실현의 욕구 (The Need for Self-Actualization)’로 번역했으나, 단어 조합이 어색하고 다섯 용어의 연결이 자연스럽지 않아 스스로 다시 정의했습니다.
복지관 사례관리 업무 현장을 생각합니다. 상당히 많은 실천 기관에서 사회사업가들이 주목하는 욕구는 생리와 안전 욕구입니다. (복지관) 사회사업 현장에서는 대체로 생리와 안전의 욕구에 어려움이 있는 당사자를 만납니다. 따라서 처음 얼마간 이를 거들려는 계획을 세우는 것은 좋습니다. 문제는 그 다음입니다. 이런 욕구가 채워졌음에도 여전히 계속해서 생리 욕구와 안전 욕구에 다시 주목하고, 이를 또 채워가겠다는 계획을 제시합니다.
매슬로우의 동기이론에 빗대면, 이런 방식으로는 당사자에게 새로운 삶의 동기를 만들지 못하므로 변화를 기대할 수 없습니다. 간신히 현상을 유지하게 합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엉뚱한 변화가 찾아옵니다. 생리와 안전 욕구를 대체로 복지 서비스 주선으로만 이뤄왔다면, 주는 것에 길들여지며 염치와 자존심 따위가 시나브로 사라지게 됩니다. 처음 모습으로 돌아가거나 더 나빠지거나. 당사자를 다시 도우려면 이제는 더 많은 서비스를 제안하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이 펼쳐집니다.
생리 욕구와 안전 욕구가 물질 영역이었다면, 애정·자존·자아실현 욕구는 정신 영역입니다. 생리 욕구와 안전 욕구는 인간다운 삶의 기본입니다. 이런 욕구를 바탕으로 상위 욕구, 정신 영역의 욕구가 이뤄질 수 있습니다. 하지만 생리 안전 욕구만 돕는다면 이는 ‘삶’이라 보기 어렵습니다. 생존 연명하게 하는 일입니다. 이것이 삶이 되려면 상대가 있고 그 속에서 우정 인정 애정 나아가 사랑을 경험해야 합니다. 지금 내 모습 이대로 자기 존재를 인정받아야 합니다. 뜻한 바가 있고, 이를 이루어가는 가운데 삶의 소명과 존재 의미를 깨닫습니다. 이때 비로소 당당한 사람으로 살아갑니다.*
「복지소학」 ‘乞言걸언’편
사람은 뜻을 좇아 사는 존재입니다. 끝까지 사람답게 살려는 뜻을 받들어 드려야 사람을 돕는 일, 養志福祉양지복지입니다.
飽食暖衣逸居 喪志卽近禽獸.포식난의일거 상지즉근금수
배부르고 등 따습고 편안하고 재미있게 살지라도 뜻을 버리면 금수에 가깝다 했습니다. 사람답게 살려는 뜻을 내려놓고 배부르고 등 따습고 편안하고 재미있게 생존 연명케 하는 일은 금수를 사육하는 일, 養口體福祉양구체복지입니다.
애정·자존·자아실현 욕구는 상대가 있어야 이뤄질 수 있습니다. 사람의 변화는 이런 정서적 영역의 욕구가 이루어질 때 가능합니다. 그렇다면 사례관리 업무로 돕는 가운데 더욱 적극적 욕구를 제안합니다. 문제 너머 희망 열망 재능 역량 가치 강점 꿈 따위에 마음을 두고 이를 생동하게 거듭니다. 그런 것들을 둘레 사람과 함께하며 이루고 누리게 합니다. 사회역할모델로써 사례관리 업무는 이런 욕구 개념을 바탕으로 자기 삶을 살며 때때로 어울려 살아가는 삶을 이루고 누리게 거드는 방법입니다.
생리적 욕구와 안전 욕구가 어느 정도 충족되면, 사랑과 호의와 소속감과 관련된 욕구가 등장할 것이며, 앞에서 설명한 전체 과정이 이 새로운 욕구를 중심으로 다시 반복될 것이다. 이제 사람은 친구나 연인이나 아내나 자녀의 부제를 전에 없이 예민하게 느낄 것이다. 사람들과 애정 어린 관계를 맺고 싶고, 집단 내에 자신의 자리를 갖고 싶은 열망이 생길 것이며, 이 목표를 이루기 위해 온 힘을 다해 노력할 것이다. 세상 그 어떤 것보다 인간관계를 원하게 되면 배고픈 시절에 사랑을 비현실적이라며 비웃었던 일조차 잊어버릴 것이다. 「매슬로의 동기이론」 (에이브러햄 매슬로, 유엑스 리뷰, 2018)